포화 속에서 나눈 달걀…예루살렘부터 키이우까지 같은날 부활절
서방 기독교·동방 정교회 부활절 올해는 같은날로 겹쳐 시리아도 아사드 독재정권 축출 후 첫 부활절…"긴장 속 평화"
서방 기독교·동방 정교회 부활절 올해는 같은날로 겹쳐
시리아도 아사드 독재정권 축출 후 첫 부활절…"긴장 속 평화"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전 세계 기독교인의 최대 축일 중 하나인 부활절인 지난 20일(현지시간).
올해는 특히 서방 기독교와 동방 정교회의 부활절이 주기상 같은 날로 겹치게 되면서 각각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 예루살렘부터 우크라이나까지 곳곳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NBC방송과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는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거리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오가고 갓 구운 부활절 빵 냄새가 가득 찼다.
그러나 이런 풍경 이면에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항상 감도는 조용한 긴장감이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6시부터 21일 새벽 0시까지 30시간 휴전을 선언한 상태였지만, 이를 진심이라고 보는 주민들은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평화 제안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키이우의 성 알렉산더 대성당 앞에 서 있던 회계사 타티아나 이에메츠(36)는 휴전에 대해 "나는 믿지 않는다"라며 "말은 많이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올렉산드르 츠호르니(24)는 부활절 휴전이 "그들이 평화롭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푸틴 대통령의 휴전 선언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상공에 러시아의 공격용 드론이 포착됐고, 이에 따라 키이우를 포함한 각 지역에서 공습경보가 울렸다.
밤새 공습 경보와 포격 소리가 계속 울리는 상황에서 휴전 선언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키이우뿐 아니라 전선에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부활절을 기념했다. 이날에도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사이 전투는 계속됐다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전했다.
군종 사제인 볼로디미르는 이날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전선 근처에서 기도하던 중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폭발에 신경 쓰지 않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집을 다니면서 부활절을 가족과 축하할 수 없는 군인들을 축복했다.
이곳에 주둔한 우크라이나군 제100 기계화 분리 여단 소속인 올렉산드르는 가족과 떨어져 부활절을 기념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의 휴전 선언을 믿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아직 그런 사람들을 묘사할 단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비난했다.
다른 군인인 바실은 자신을 제외하고 부활절을 위해 모일 가족들을 생각하면 "기쁘다"라면서 "그들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가자 전쟁의 그늘이 드리운 예루살렘에서도 부활절을 기념했다.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맞는 부활절이었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19일 예루살렘 순례객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땅에 묻혔다가 부활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묘에서 촛불을 밝히고 철야 기도를 했다.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는 이날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묘 회당에서 부활절 미사를 집전했다.
피자발라 대주교는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우리가 정의를 보게 될 것이라는 징후이자 근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인도주의적 재앙의 악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시리아에도 수십년간 이어졌던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축출된 이후 첫 부활절이 찾아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역사적으로 박해를 받아온 시리아 내 소수 기독교인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시리아 과도정부의 아메드 알샤라 대통령이 부활절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긴장한 상태로 이날 하루를 보냈다고 전했다.
약간의 우려와는 달리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여느 부활절과 다름없이 평화로웠고, 거리에는 부활절을 기념하는 장식들이 걸렸다.
이날 아침에는 사람들이 부활절을 맞아 좋은 옷을 입고 교회로 향했으며 어린이들은 계란을 선물로 받았다.
이날 다마스쿠스에 있는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 알 자이툰 성당에서는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며 강론 중 예수의 부활과 시리아의 부활을 비교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새 정부가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이 일간지는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도연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