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허투 저발현 유방암 환자도 표적치료 기회 열렸다”
[유방암 허투 시그널 찾기] ②전이성 유방암 최신 치료인터뷰 안희경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허투 저발현에 효과적인 ‘엔허투’
무진행 생존 기간 2배 연장시켜
국내 진료 권고안에도 반영

“딸 아이 결혼식이 6개월 후인데 꼭 보고 싶어요.” “손주 태어날 날이 눈앞인데 안아볼 수 있을까요.” 진료실에서 마주한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한마디에 안희경(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하루가, 이들에겐 기적처럼 간절히 기다려지는 날이다.
유방암은 여성의 삶과 감정에 깊이 뿌리내리는 암이다. 엄마이자 딸, 아내로서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던 40·50대 여성들이 진단과 함께 일상의 중심에서 멈춰 선다. 완치가 어려운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조금 더 살아간다’는 말은 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부모님의 생신을 챙기며, 자녀의 결혼식같이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주하는 기회를 의미한다.
“전이성 유방암을 안고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지켜내는 환자가 점점 늘고 있어요. 그 변화 뒤엔 치료 전략의 전환점이 된 약들이 있습니다.” 안 교수의 얘기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허투(HER2)다. 허투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세포 외부의 신호를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일부 암에서 허투가 과도하게 발현되면 암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자란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허투 단백질이 뚜렷하게 많이 나타나는 유방암(허투 양성)만이 표적치료 대상이었다. 반면에 허투 신호가 약한 저발현(허투 음성)은 치료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허투 치료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허투 저발현에도 효과가 있는 표적치료 신약인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등장하면서 그간 기회가 없던 환자에게 가능성이 열렸다.
안 교수는 “허투가 강하게 발현된 양성을 찾는 건 오랫동안 해 왔다. 이젠 허투가 약하게 발현된 환자군까지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됐다”며 “이 환자들에겐 효과적인 치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Q : 어떤 환자에게 해당하나.
A : “허투 음성으로 분류됐지만 실제로는 허투 단백질 신호가 약하게 존재하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치료 대상이다. 유방암은 조기 진단이 많이 되므로 전체적으로 완치율이 높은 편이지만 일부는 재발하거나 진단 당시부터 이미 다른 장기로 퍼진 전이 상태로 온다. 매년 약 3만 명의 여성이 새롭게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이 중 10%만 재발해도 절대 적지 않은 수다. 허투 양성 환자는 전체의 10~15%다. 허투 저발현 환자는 50%로 추정된다.”
Q : 치료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A : “허투 저발현 환자의 무진행 생존 기간은 기존 항암 화학요법에서 평균 5개월 수준이었다. 엔허투를 투여한 환자군에선 이 기간이 평균 10개월로 두 배 가까이 연장됐다. 이 수치는 중앙값 기준이므로 일부 환자에겐 더 짧을 수 있다. 반대로 훨씬 긴 기간 동안 병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Q : 어떤 원리인가.
A : “기존의 표적치료제가 암세포 하나만 겨냥하는 ‘저격총’이면 엔허투는 주변 암세포까지 함께 공격하는 ‘수류탄’에 비유되는데, 이를 바이스탠더 효과라고 한다. 허투가 약하더라도 발현돼 있기만 하면 그 주변의 암세포들까지 함께 영향을 받으므로 치료 효과가 크다.”
Q : 허투 신호 강도는 늘 같은가.
A : “아니다. 드물긴 하나 시간의 경과나 치료 영향으로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처음 유방암 진단에선 0점(허투 0)이었어도 재발·전이 후 검사에서 1점(허투 저발현)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치료 시점마다 허투 상태를 다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엔허투 같은 치료제가 있으므로 의료진은 이런 변화를 주의 깊게 살핀다.”
Q : 환자가 알아야 할 부작용은.
A : “표적치료제라 해도 탈모, 구역이나 구토 같은 부작용이 흔하다. 구토는 항구토제로 어느 정도 관리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힘든 증상이다. 약물 유발성 간질성 폐 질환(ILD) 발생은 10% 이내로 드물지만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한다. 기침이나 숨참 등의 변화가 느껴지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환자 본인이 몸의 이상 신호를 먼저 느끼므로 약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의료진과 긴밀히 소통하고 관리해 가면서 치료 효과를 보는 사람이 많다.”
신약의 등장은 진료실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자녀의 중학교 입학을 걱정하던 환자가 아이의 대학 진학을 보고, 결혼까지도 기대한다. 안 교수는 “가족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새로운 치료제들이 환자와 가족에게 주는 의미”라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의 진료 지침에서는 허투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기존 표준치료가 효과 없을 경우 엔허투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를 반영해 진료 권고안이 개정됐다. 일반적으로 질병 분류는 암세포의 모양이나 조직학적 특징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이번엔 효과 좋은 약이 먼저 등장하면서 새로운 환자 분류군을 만들어냈다. 안 교수는 “탁월한 치료제가 분류 기준을 바꾸고 공식 진료 지침에도 반영된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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