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앞바다까지 오징어 씨 말라"…동해 어민들 눈물, 배 내다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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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업 일보다 세워두는 날 많아
겉보기에 멀쩡한 이 배는 곧 한국수산자원공단에서 감정평가를 진행한 뒤 조선소로 옮겨져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신청 2년 만에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하는 감척 사업에 선정돼서다. 강동호는 그동안 동해안 근해와 러시아를 오가며 오징어를 잡아 왔다. 하지만 오징어가 동해안은 물론 러시아 어장에서도 많이 감소하면서 조업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었다.
강동호 앞에서 만난 선장 진명호(65)씨는 “지난해 오징어를 잡으려고 러시아에도 40일 넘게 다녀왔지만,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1억원 넘게 적자를 봤다”며 “요즘 동해에 조업을 나가봐야 적자만 보니 그냥 세워두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7명의 선원이 함께 일해 온 진씨 배의 경우 조업을 나가면 하루에 200만원(인건비 제외)의 비용이 든다. 동절기의 경우 하루에 경유 7드럼(1드럼에 200L)을 쓴다. 드럼당 18만원 하는 경유에 식대, 담뱃값을 더한 비용이다. 5일만 나가도 1000만원이 들다 보니 오징어를 잡아봐야 큰돈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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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인건비에 보험료 감당 안 돼
강릉 연안에서 오징어 채낚기 어선(9.77t급)으로 조업하는 윤국진(67)씨도 지난해 감척 사업에 선정돼 폐선 절차를 밟고 있다. 윤씨 역시 3년 전부터 배를 팔려고 했다. 하지만 오징어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윤씨는 “배를 팔려고 해도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없다 보니 몇 년째 감척 대상에 선정되기만을 기다렸다”며 “다행히 이번에 감척 대상에 선정되면서 한시름 놓게 됐다”고 말했다.
2022년까지만 해도 강원지역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감척 신청은 근해ㆍ연안 모두 없었다. 하지만 2023년 근해 채낚기 어선 4척이 신청을 하더니 지난해 근해 채낚기 어선 18척, 연안 채낚기 어선 7척이 신청했다. 올해는 3월말 현재 벌써 근해 채낚기 어선 23척과 연안 채낚기 어선 15척이 신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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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652t, 지난해 852t 급감
감척 대상이 되면 감정평가에 따른 뱃값과 폐업지원금 등이 지급된다. 폐업지원금은 평년 수익액 3년분의 범위에서 정해진다. 오징어의 경우 그동안 어획량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에 폐업지원금 또한 크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도 어업인의 신청이 증가하는 건 오징어 어획량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강원도 글로벌본부의 주간어획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852t에 불과하다. 2020년 8652t이 잡힌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2021년엔 6035t, 2022년 3504t, 2023년 1365t이 잡히는 등 매년 감소 추세다.
윤경식(63) 고성군 근해채낚기협회장은 “지금은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 손실을 덜 보는 상황까지 왔다”며 “감척 사업에 선정이 안 되면 빚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어업인들이 많다. 하루라도 빨리 감척 대상에 선정돼 그동안 쌓인 빚의 일부라도 갚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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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표층 수온 18.84도 57년 관측 최고치
윤석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가 적정 서식 수온대(12~18도)를 찾아 북상하거나 외해로 이동하면서 동해안에서의 자원 밀도가 감소했다”며 “오징어는 회유성 어종으로 산란을 위해 남하하는데 회유 경로(북한 수역)에서 과도한 어획 활동을 할 경우 자원 재생산과 개체군 유지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어획량 급감으로 감척을 신청한 어민들을 위해 국민의힘 이양수(속초ㆍ인제ㆍ고성ㆍ양양) 국회의원이 특별폐업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연근해어업 구조개선 및 지원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에는 감척 대상자로 선정된 어업인의 평년수익액이 일정 기준액에 미달하고, 해당 어업인이 주로 포획하는 어종이 어획량 급감 기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특별폐업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진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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