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가 곧 해고 통지…'초저가'로 몸집 키운 쉬인 빌리지의 눈물 [이도성의 본 차이나]

" 아, 사장님! 대답해주면 안 된다니까요! "
갑자기 기자 등 뒤로 귀가 찢어질 듯한 고함이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남성이 씩씩거리며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난 17일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서다.
공장 2층 사무실에서 이 업체 사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후베이(湖北)성 출신인 그가 27년 전 맨손으로 광저우에 건너온 뒤 상주 직원 100명이 넘는 건실한 회사를 일궈낸 일화를 듣고 있었다.

공장 밖에서 15분 넘게 설득한 끝에야 총관리인이 취재 요청을 받아들였다. 업체명과 총관리인의 이름을 익명 처리하고 공장 직원들을 개별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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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경쟁력이 관세 직격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미·중 관세전쟁에 직격타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모인 거의 모든 공장이 쉬인에 초저가 의류를 납품한다. 중국 내 쉬인 공급업체는 지난해 5800곳에서 올해 7000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날 기자가 찾은 공장 역시 1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재봉틀과 맨손 바느질로 여성 의류를 만들고 있었다. 매달 200종이 넘는 신상품이 탄생하는 ‘패스트 패션’의 현장이다.

총관리인은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라 어떤 기사가 나갈지 몰라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며 사과했다. 그는 “지난해엔 미국에서 들어오는 주문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어 “이곳 업체들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을 만들기 때문에 판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장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곳곳에 공장과 창고 부지를 싸게 세 놓는다는 공고가 덕지덕지 나붙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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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면제’ 폐지가 곧 노동자 생존 문제
다음 달 2일이면 소포 1건당 최소 100달러 관세가 적용된다. 심지어 6월부터는 고정관세가 200달러로 오른다. 지난해 미국 세관이 면세 처리한 저가 소포 14억 개 가운데 60% 정도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다.

낮은 가격과 무료 배송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던 쉬인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하청공장 수천 곳과 노동자 수십만 명의 생존 문제로 이어진다. 기자가 만난 쉬인 빌리지 노동자 대부분은 인터뷰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에 나오자 인상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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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아까워 서서 밥 먹는 노동자들
한 공장은 같은 건물에 구내식당을 운영했는데 일부 직원은 밥그릇을 들고 일어선 채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곤 곧바로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다. 완성 제품 개수에 따라 추가로 수당을 받는 임금 구조 때문이다. 1분 1초가 아까워 점심시간마저 쪼개가며 재봉틀을 돌리는 것이다. 이곳 노동자 상당수는 매일 12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사람들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소액 면세’ 폐지를 마치 ‘해고 통지’처럼 여겼다. 의류공장에서 근무하는 한 30대 남성은 “일감이 떨어지면 다른 일을 알아볼 생각”이라면서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직원들보다는 공장 사장들이 ‘아예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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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 모드’에 애국 소비 움직임까지
온라인상에선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중국산 제품 구매를 독려하고 나섰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엔 미국 브랜드 제품의 원가를 폭로하고 공장 직거래를 독려하는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도 알고 보면 다 중국산’이라는 내용으로 이름값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대신 직접 중국 업체에 사라는 취지다.
쉬인 빌리지에서 만난 한 재봉사도 “중국처럼 가성비가 좋으면서 품질도 괜찮은 상품을 만드는 곳은 없다”며 “중국 기업은 강하기에 빠르게 변화해 살아남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또 다른 공장 책임자는 “캐나다와 남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도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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