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현장선 “AI 다 써요”…정작 저작권 논의는 실종

비단 이미지뿐만 아니다. 생성형 AI(이하 AI)에 프롬프트(명령어)를 작성하기만 하면 음악·영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콘텐트 제작자들의 사용도 늘었다. 운동선수 추성훈의 유튜브 영상에선 AI로 제작된 “야노시호~ 화~ 났다” 배경음악(BGM)이 흘러나온다. 안무가 가비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디바마을 퀸 가비’ 속 인터뷰 배경 이미지는 대부분 AI로 제작됐다. 웹예능 시청자들도 AI 생성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영화·드라마 제작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상업 영화·드라마 현장에서 25년 동안 일 해온 강모(54) 감독은 “미술 현장에서 ‘덧방’할 때 미드저니(이미지 생성형 AI)를 많이들 쓴다”고 말한다. 초상권이나 작품 저작권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업 현장 30년 차인 A 감독(58)은 AI를 보조작가처럼 활용하는 동료 감독들을 목격했다. 그는 “클로드(텍스트 작업용 생성형 AI)를 통해 시나리오 구조를 분석하거나 간단히 법학·의학 용어 고증을 할 때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영화제 등도 발 빠르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 영화 제작 워크숍을 열고, 국내에선 처음으로 AI 영화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했다. CGV는 지난달 17일부터 AI영화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AI만을 이용했거나 AI가 상당 부분 활용된 작품이 출품 대상이다.
이렇게 사용례가 쌓여가지만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의는 시작 단계다. 해외에서도 아직 확실하게 합의된 규칙은 없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DGK) 관계자는 “(공백 상태가 계속된다면) 창작자들이 창작 생태계 속 원치 않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돼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AI 사용을 ‘일단 경계’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지난해 1월 넷플릭스는 연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보고서에서 생성 AI가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하며 ‘AI 생성물 활용 시 지적 재산권 소송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이유로 들었다.
국내에선 2023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AI-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이하 워킹그룹)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12월 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권리자 보호엔 미흡하다.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 준비 중인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리자 보호에 필수적인, 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화에 대한 조항이 없는 것이 대표적 맹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EU가 세계 최초로 제정한 포괄적 AI 규제법은 권리자 보호를 위한 조항이 있다는 점에서 국내 AI 기본법과 차이가 있다. EU의 권리자들은 AI가 창작물을 학습하는 단계와 AI 생성물이 활용되는 단계에서 적절한 보상체계를 요구하고, 원치 않을 경우 자신의 저작물 학습을 거부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을 주장할 수 있다.
다음달 불가리아에서 열릴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 총회를 앞두고, 한국 저작권 단체와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방한한 리카르도 고메즈 카 발레이로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에 “EU는 보상체계를 미세조정하고 있는 단계”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저작권 보호를 밑거름으로 콘텐트 산업이 성장해왔기 때문에, 권리자 보호와 경제적 성장이 대립된다는 시각은 잘못됐다”며 “AI 기술이 문화산업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창작자 단체들이 선제적으로 합의 주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이 창작자 개인에게 있지 않고 제작사에 위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상창작물의 경우 권리자 보호가 더 취약할 우려도 있다. 실제 현재 문체부 워킹그룹에는 문학·음악·언론 측 권리자 단체만 포함돼있다. 문체부는 “대표 신탁관리 단체가 있는 장르를 위주로 권리자 단체를 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CISAC 소속 벤저민 응 디렉터는 “영화는 기술과 함께 발명된 장르라, 다른 장르의 창작자와 달리 협상력이 낮을 수 있다”며 “법·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타 장르와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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