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전력 직접구매 제도, 관건은 요금제 개선과 형평성

작금의 전력 직접구매 제도가 견리망의를 떠올리게 한다. 직접구매 제도는 2001년 소비자 선택권과 시장 효율성을 위해 도입됐으나 요금이 낮아 기업들이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산업용 요금이 인상되자 기업들이 직접구매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 평균 전기요금은 2022년 약 481억원에서 지난해 약 656억원으로 36.4%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직접구매를 추진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이것이 전력시장 선진화의 시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진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요건들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무엇보다도 전기요금이 적기에 조정돼야 한다. 2021~22년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한국은 요금을 21.1% 인상했지만, 이탈리아(702.7%)·영국(173.7%) 등보다는 현저하게 낮았다. 이후 단계적으로 요금을 인상했지만 한전은 작년 말까지 34조7000억원 적자와 200조원 이상의 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전기요금이 낮을 때는 한전에, 연료비 반영을 위해 요금이 인상됐을 때는 시장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유리한 것만 선택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직접구매로 빠져나가면 남은 소비자들, 즉 제도 활용이 어려운 소상공인이나 일반 가정에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요금제도 개선 등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직접구매자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도매시장 가격은 하루에도 ㎾h당 70원에서 160원으로 변화가 심하다. 그동안 한전을 통해 변동성을 줄여왔는데 직접구매 시에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 의문이다.
전력시장 운영 측면에서는 기업의 잦은 이탈과 복귀로 시장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충분한 거래 유지 기간을 두고, 향후 직접구매자들이 수요 입찰 등 시장 참여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독일·스페인 등에서 직접구매 참여조건을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전력시장 선진화는 필요하지만, 요금체계 개선과 형평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견리망의의 상대어는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정부, 한전, 기업, 소비자 모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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