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거꾸로 들고 "왕은 없다"…美 전역서 반트럼프 시위
19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지난 4일 ‘핸즈 오프(Hands Offㆍ손 떼)’라는 이름의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린 뒤 2주일 만의 전국 단위 항의 집회다.
19일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독립전쟁 발발 250주년 기념일인 이날 수도 워싱턴 DC를 비롯해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등 미 전역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열렸다. 이날 개최된 700여 건의 집회ㆍ시위는 풀뿌리 저항 캠페인 ‘50501’ 운동의 일환이다. 50501 캠페인은 하루(1) 동안 미국 50개 주에서 50개의 반트럼프 시위를 조직하자는 의미다.
50501의 헌터 던 대변인은 “민주주의 수호, 헌법 수호, 행정권 남용 반대, 비폭력 풀뿌리 운동을 표방한다”고 WP에 말했다. 이 단체는 이날 시위를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이민 정책,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 연방정부 인력 감축에 대응하는 행동의 날’로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수도 워싱턴 DC 상징물인 워싱턴 기념탑 주변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행정 실수로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보낸 킬마르아브레고 가르시아의 귀환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후 이들은 워싱턴 기념탑에서 1.6㎞ 떨어진 백악관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트럼프는 물러가라’, ‘왕은 없다(No King)’ 등이 적힌 현수막과 팻말을 시위대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거꾸로 흔들고 “킬마르를 집으로 데려오라”는 구호를 외치며 백악관에 이르는 8차선 도로를 따라 행진했다.
가두행진 도중 대규모 해고에 반발한 직원들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앞을 지날 때에는 시위대 구호가 더 커졌다. 이들은 “부패의 철자가 어떻게 되나”, “E-L-O-N”이라고 함께 외치며 연방 정부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 중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우리의 데이터ㆍ달러ㆍ민주주의에서 손을 떼라’, ‘억만장자보다 가족이 우선’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며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를 표했다.
뉴욕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강제 추방 정책을 규탄했다. 시위대는 “단결된 국민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지나가던 2층 관광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보냈다고 NYT는 전했다.
이밖에 250년 전 미국 독립전쟁의 개막을 알린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와 잭슨빌, 일리노이주 시카고, 앨라배마주 버밍엄, 펜실베이니아주 에프라타 등 곳곳에서 연방 정부 인력 감축, 불법 이민 강제 추방, 사회보장 제도 축소, 성소수자 차별 정책 등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국정 운영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콩코드에서 열린 집회에 ‘파시즘은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대형 포스터를 들고 참석한 코난 월터(65)는 “오늘은 영국 국왕의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며 “권위주의 통치가 오늘날 부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한 사라 하비(65)는 “우리는 나라를 잃고 있다”며 “손주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음식 기부, 지역 청소 활동 등 지역사회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식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5일에 이어 2주일 만에 미 전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집회가 열린 데 대해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5일과 19일 집회를 조직한 단체 ‘ANSWER 연합’의 활동가 벤 지네비치는 “단 한 번의 행진으로 요구를 관철하거나 불의를 끝낼 수는 없다”며 “실제 정치적 세력으로 드러날 수 있는 지속적인 운동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도 연이어 나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에서 168명의 희생자를 낸 폭탄테러 발생 30주년을 맞아 현지 교회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최근 몇 년간 나라가 더욱 양극화됐다”며 “만약 우리의 삶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의해 압도된다면 더 완벽한 연방을 향한 250년간의 여정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끔은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다”고도 했다. 독선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말로 해석됐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모교인 하버드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취소 조치를 두고 “불법적 억압”이라고 규탄했으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같은 날 한 행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돼 엄청난 피해와 파괴를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김형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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