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미국과 '졸속합의' 불안 키우는 통상협상 비밀주의
[특파원시선] 미국과 '졸속합의' 불안 키우는 통상협상 비밀주의(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이번 주 미국과 무역 협상을 앞두고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밀려 불리한 협상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다.
그 불안감의 배경에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협상을 서두르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냐는 질문에서부터 임기가 한 달 반도 남지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협상을 결정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까지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필자는 또 하나의 이유는 통상협상 특유의 비밀주의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관세를 낮추도록 설득하기 위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인 구상은 가스, 원유,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확대하고, 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의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미국의 통상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세계 다른 주요국들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만, 정부는 그간 미국과 여러 차례 협의해오면서도 미국의 요구와 한국이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통상 당국자들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협상 내용과 계획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각국에 가져오라고 한 "최선의 제안"이 미국에만 최선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통상협상의 결과는 국가 경제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협상이 정부 간에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국민은 정부가 협상을 타결한 뒤에야 그 내용을 알게 된다.
정부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협상한다고는 하지만 협상 결과에 따라 각 산업계와 경제 주체의 이해득실이 크게 갈리기 때문에 협상 상황을 국민, 국회와 더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거부터 제기됐다.
물론 국가 간 외교는 비공개로 하는 게 관례이다.
그러나 온갖 외교 관례와 규범을 노골적으로 무시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먼저 위반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상황에서 정부만 관례에 묶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번 무역 협상을 과거처럼 밀실에서 진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국익이 걸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거론하며 여러 사안을 포괄적으로 협상하는 "원스톱 쇼핑"을 예고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협상을 통상 분야로 국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과 국회가 협상의 손익계산서를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협상에 속도가 붙을 수는 있지만, 국민과 이해당사자들의 공감대가 결여된 관료 주도의 협상은 그 결과가 공개된 뒤 논란이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광우병 위험이 논란된 이후 통상협상에 대한 국회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12년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약칭 통상조약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정부가 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 전 공청회를 개최해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협상 목표와 주요 쟁점, 대응 방향 등을 담은 통상조약체결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절차마저도 형식적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미국과 진행할 협상과 관련해 정부는 통상조약법에 따른 절차를 언제 밟을지 아예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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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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