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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그 빌런 잊어라…연극판 녹인 엄기준 명품 연기

조승우에 이어 엄기준이다. 지난해 셰익스피어 ‘햄릿’으로 폭발적인 매진 사례를 기록했던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 올해는 아서 밀러의 ‘시련’으로 달아올랐다. 인터파크 평점 10.0일 정도로 관객 반응이 뜨거운데, 웬만한 뮤지컬도 빈자리가 많아 ‘공연계 전체가 얼어붙었다’는 불경기에 순수 연극 공연으로선 보기 드문 열기다.

조승우 ‘햄릿’은 물론 5시간짜리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 대작을 도맡고 있는 신유청 연출과 상업극은 물론 정극에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김수로 프로듀서가 뭉쳤고,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이태섭 디자이너의 무대도 국공립기관 제작 못잖게 고품격이다.

진지희(사진 왼쪽), 엄기준.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미국 현대 희곡의 아버지’ 아서 밀러가 1953년 쓴 ‘시련’은 17세기 마녀재판을 소재로 당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과 거짓선동의 비극을 고발한 작품. 그 바람에 밀러 자신도 공산주의자로 몰려 핍박을 받았기에 가장 애착 가는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국내서 자주 공연되진 않지만 배우들의 연기 교과서로 통하는데, 프로듀서 김수로도 “대학시절 ‘시련’을 통해 연기 기초를 다졌고 언젠가 나이가 들면 꼭 다시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며 몸소 조연으로 출연중이다.

연극 '시련'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야밤에 숲에서 친구들과 벌거벗고 춤을 추다 들킨 소녀 아비게일은 흑마술에 걸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사랑하는 유부남 존 프락터의 부인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고발한다. 프락터는 진실을 밝히려 애쓰지만 꼰대 판사 댄포스는 권위와 명예만 앞세우며 진실을 외면한다. 교활하고 사악한 아비게일이 돈을 들고 튀어도 꼰대들의 법정은 요지부동이다. 가짜뉴스도 한번 새겨지면 신념이 되고, 군중심리에 휩쓸린 사람들은 부당한 현실에도 침묵을 택한다.

등장인물들이 중요한 대사를 할 때 조명만 바뀌는 빈 벽에 그의 이름만 오롯이 쏘아지는 상징적인 무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농부 존 프락터가 끝까지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 건 차마 이름을 더럽힐 수 없어서다. 엄기준의 진실한 존 프락터 연기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7인의 탈출’로 각인된 극악무도한 빌런의 얼굴을 싹 잊게 만든다. 매체 스타들이 무대로 돌아오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연극 '시련'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박은석·박정복 등 ‘대학로 황태자’들이 포진한 호화 캐스팅 속에서도 남명렬이 연기하는 댄포스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나는 이 법정의 판사다. 내가 곧 법이다”“법은 법이다. 법 앞에선 누구도 예외가 없다”며 닥치고 권위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대사들이 왠지 낯설지 않아서다.

연극 '시련'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그럼 왜 지금 ‘시련’인가. 그리스비극의 왕이나 귀족이 아닌 ‘보통 사람의 비극’을 추구했던 아서 밀러는 ‘시련’에 이르러 비로소 보통 사람에게서 비극적 영웅의 면모를 완성하고 현대 비극의 가능성을 활짝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햄릿이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존재의 고뇌를 드러내며 근대적 개인의 원형을 제시했다면, 집단적 억압에 맞서 위대한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현대적 개인의 가능성을 제시한 게 존 프락터다.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며 미쳐가는 시대, 우리는 어떤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나.









유주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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