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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에드워드 리, 미국 곳곳 이민자 식당에서 만난 맛과 사람[BOOK]

버터밀크 그래피티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위즈덤하우스







윌리엄 포크너의 중편소설 『곰』에는 “신이 미국을 만든 것은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자랑스러워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노예제와 내전으로 파괴된 미국, 특히 남부의 현실은 그 기회를 철저히 망친 모습에 가까웠다. 구대륙과 달라야 했던 미국은 결국 다르게 되지 못했고 더 낫지도 않았다. 포크너가 보기에 인간은, 또는 미국은 아까운 기회를 써버렸다. 적어도 미국 본래의 이상에 비추어보면 말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비관주의와 무관하게 이 “두 번째 기회로서의 미국”이라는 이념은 전혀 소멸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이민자들의 물결은 지금도 넘친다. 미국의 꿈은 기이하게도 외국인들이, 특히 바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할 각오가 된 이민자들이 지탱하는 것 같다.


저자 에드워드 리 역시 그 꿈의 산물이다. 그는 1972년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사는 ‘네가 아시아계니까’ 수학을 열심히 하라고 권유했다. 반발심에 그는 문학에 몰두했다. 뉴욕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의미는 없다고 느꼈지만 ‘부모를 위해’ 졸업했다. 이미 요리사로 진로를 정한 뒤였다.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이후 그와 말도 하지 않았다.

뉴욕에 식당을 열었는데 9·11 테러를 만났다. 그는 연고도 없는 남부로 갔고, 그곳 요리에 매료되었고 켄터키주에서 식당 주인이 되었다. 그곳 여성과 결혼도 했다. ‘출생지로는 브루클린인, 핏줄로는 한국인, 본인의 선택으로는 남부인’이 된 것이다. 그 사이에 세 권의 책을 쓰고 미국 TV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다가, 2024년 ‘흑백요리사’ 출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2018년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 『스모크&피클스』가 미국 남부 요리법에 관한 것이고, 세 번째 책 『버번 랜드』는 켄터키 위스키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이민자 식당을 탐험하는 내용이다. 미국 전역을 돌며 캄보디아, 페루, 모로코, 스웨덴,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차려내는 음식을 맛보고, 홀과 주방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리고 주인장의 얘기를 듣는다. “훌륭한 요리를 발견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일이 내겐 더 흥미롭다.”

각 장 끝에 레시피가 나온다. 사진은 실려 있지 않다. 저자는 사진이 없을 때 더 자유롭고 요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어판은 요리 사진이 없는 김에 아예 흑백으로 가기로 했는지, 원서의 저자 사진도 흑백으로 바꾸었고 본문 바탕에는 회색 톤을 살짝 깔아 놓았다.


왜 이민자 요리를 탐구하는가? 거기에는 “내가 요리에서 찾는 요소들, 즉 단순함과 융통성, 절약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무엇을 찾아다니고 있는지 독자도 알고, 본인도 안다. 이것은 세계 음식 기행이 아니다. 다른 전통에서 온 낯선 음식과 식당을 보면서, 미국은 자신이 이민자의 나라임을 깨닫고 있을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는 땅이라는 자신의 이념을 기억하고 있을까? 즉 저자는 자신이 정말 미국인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소년 시절 한 클럽에서 그는 생각했다. 여기는 진짜가 아냐. 나 같은 사람을 들여보냈잖아.

서먹했던 아버지의 임종을 하는 장면이 책에 나온다. 드라마틱한 감정 폭발 없이 담담하게 묘사되다가 예상 못 한 곳에서 갑자기 끝난다. 여기에 쓰지 않겠지만 중간에 너무나 현실적으로 코믹한 대사도 나온다. 확실히 저자는 요리를 택하지 않았다면 문학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요리를 택했을까? 이런 의문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저자가 곳곳에 남긴 단서가 보인다.

앨라배마의 한국 식당 주인에게 저자는 묻는다. 자녀들도 한국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 줄 아나요. 주인은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만 괜찮다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왔으니 아이들에게는 이 기회를 맘껏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그 계산은 결국 맞을까. 하지만 묻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와 똑같다.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저자는 쓴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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