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이재명표 국토보유세’ 확실히 포기했나

그럼 국토보유세 공약은 포기한 걸까. 이 후보가 비슷한 언급을 하긴 했다. 지난 2월 24일 삼프로TV라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다. 이날 “국토보유세 문제는 다시 생각하는 거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 후보는 “제가 보기에 무리한 것 같다. 수용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구상에 불과했다. 반발만 받고 표는 떨어지고 별로 도움이 안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3년 전엔 핵심 공약 내세웠지만
지금은 말도 잘 안 꺼내는 분위기
당선 이후 추진할 속내는 아닌가
지금은 말도 잘 안 꺼내는 분위기
당선 이후 추진할 속내는 아닌가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민생연석회의 위원 중 주거 분과 명단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시장을 무시한 부동산 규제로 결국 집값 폭등을 일으켰던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까 봐 걱정돼서다. 주거 분과의 좌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맡았다. 특히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남 소장은 ‘이재명표 국토보유세’의 설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국토보유세의 이론적 배경은 미국의 급진적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1879년 『진보와 빈곤』이란 책에서 주장한 ‘토지가치세’다. 국토보유세나 토지가치세나 이름만 조금 다르지 본질에서는 비슷한 개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통상학부)가 국내에서 대표적인 헨리 조지 연구자다. 변 전 장관은 “『진보와 빈곤』과의 인연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며 ‘내 인생의 책’으로 꼽기도 했다.
헨리 조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 소장은 2023년 12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불평등과 비효율의 주범인 토지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대안”이라며 ‘토지배당제’를 주장한다. 전국의 땅 주인들에게 비싼 세금을 매기고 그렇게 걷은 돈으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실현하자는 구상이다. 그게 국토보유세다.
이 책에 대해 이 후보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담겼다”며 추천사를 썼다. 그러면서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국민의 경제기본권 보장을 통해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성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도 했다. 이때만 해도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 공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국토보유세는 보수 성향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비판이 주목된다. 그는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국토보유세에 대해 “전형적인 보유세 포퓰리즘 사례”라며 “(정책 목표인) ‘보유세 1%’는 이렇게 편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총체적인 부동산 규제의 설계자였던 김 전 실장조차 ‘포퓰리즘’이니, ‘편법’이니 하며 지적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얘기다.
김 전 실장의 글에선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 있다. 그는 “(2022년 대선에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고 보유세 관련 여론이 악화되자 그동안 국토보유세를 강조해오던 정신과는 반대로 가고 말았다. 선거 캠프 내부에서는 당선 이후 추진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를 정당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적었다. 선거 때는 표를 의식해 조용히 있다가 일단 대통령이 되면 국토보유세를 추진한다는 속내가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고 3년 전 얘기다. 현재 국토보유세에 대한 이 후보의 진심은 무엇인가.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길 바란다.
주정완([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