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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의 해양안보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관세 전쟁을 시작한 지난 7일. 필자는 미 해군연맹이 주최한 해양 방산전시회(Sea Air Space Exhibition)에 참가했다. 올해 60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미군이 주최하는 최대 규모의 전시회다. ‘미국 조선·해운 산업의 진단과 부활 대책’이란 주제로, 점증하는 중국의 해양 안보 위협에 미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가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의 군과 정부, 업체 고위 인사들은 중국에 비해 크게 열세에 놓인 미국 해군력이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라고 진단했다. 민감하고, 해양 패권에 대해 절박한 현재 미국의 상황을 대변하듯 존 펠런(John C. Phelan) 신임 해군성 장관이 직접 세미나를 찾았다. 포럼이 진행되는 3일 동안 열 명이 넘는 미 해군의 대장과 중장급 현역 해군 장성도 참석해 이런 지적을 경청했다. 패권국 미국이 조선·해운 능력의 쇠퇴를 심각한 안보 위기로 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 해양 패권 상실 위기에 비상
자만이 미 조선산업 쇠퇴 불러
미, 한국 해양안보 도울 힘 부족
K방산 활용한 중장기 전략 필요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 조선의 흥망
미국 해군의 군수 지원 함정인 ‘윌리쉬라’함이 지난해 9월 정비를 받기 위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도착했다. 미 해군과 국내 업체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상선대(商船隊·Merchant Marine)는 독립 전쟁 시대부터 국가 안보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국 상선대를 해군과 함께 국가 안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당시 상선대의 부족으로 전략 물자 수송에 큰 애로를 겪으면서 미국은 1920년 자국 조선 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해 상선법(Merchant Marine Act)을 제정했다. 이어 1936년엔 상선육성법을 만들어 연방 정부가 선박 건조비와 인건비를 보조하고, 교육기관에서는 선박을 운영 관리하는 해기사를 양성했다. 또 연방 정부는 해양 안보와 산업의 컨트롤 타워인 해사위원회(US Maritime Commission)도 만들었다. 1940년 크레인을 이용한 모듈 공법을 통해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개발해 미국의 조선 능력은 황금기를 이뤘다. 이후 5년 동안 미국은 4600여 척의 상선을 건조했고, 1960년에는 700척의 국적 상선대를 이루게 된다. 상선대가 미 해군과 함께 전 세계의 바다를 통제하며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체계적인 육성으로 빛을 발하던 미국의 조선, 해운 산업은 공교롭게도 냉전 체제가 무너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재정 부족으로 인한 보조금 지급 중단, 세계화 추세에 따른 값싼 선박의 아웃소싱, 선박의 등록 국가를 임의로 선정하는 편의치적제도(flags of convenience), 해기사 양성 부족 등이 이유였다.

무엇보다 바다 패권에 대한 경쟁자(소련)가 없어지며 생겨난 정부와 군 지도부의 자만과 무관심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이후 미국 상선대는 200척으로 감소했고, 선박의 평균 ‘나이’도 45년으로 노후화했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4배로 커졌음에도 이를 받쳐줄 자국 상선대는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1947년 통상의 60%를 차지했던 상선대의 수송 실적은 1%로 급락했고, 자연히 유사시 미군의 원정 작전에 필요한 군수물자 수송 능력 역시 현저히 줄었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상선대를 이용해 무기와 병력 운송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조선산업이 활황이던 6·25 전쟁 때 미국은 최초로 군 해상수송체계(Military Sealift) 개념을 적용해 255척의 상선을 동원했지만 이제는 미국 조선의 쇠퇴로 우리 안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해양 굴기, 미국의 위기
미국의 조선, 해운 능력이 크게 쇠퇴하는 동안 중국은 지속적으로 해양 팽창 정책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1300억 달러(약 184조6000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해 수백 개의 조선소를 육성했다. 미국이 연간 5척의 상선을 건조하는데 비해 중국은 230배가량인 1700여 척의 건조 능력을 갖췄다. 쪼그라든 미국의 국적 상선대와 달리 중국은 7000척을 운영 중이고, 관련 산업 인력도 60여 만명에 이른다(미국은 15만3000명). 특히 현대 해운의 총아인 컨테이너의 50%, 관련 장비의 97%를 중국이 생산한다. 군함의 경우 2020년대 초반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2030년에는 140여 척으로 격차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중국은 스리랑카, 파키스탄, 마리아나, 모잠비크 등 8개국에 거점 항만을 건설하여 국제 공급망의 기반을 구축했다. 또 남중국해에 7개의 인공섬을 건설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지부티에는 해군 기지까지 건설하며 영향력 확대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서해를 포함한 전 세계 바다에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몰락한 미국의 조선과 해운 산업은 중국의 굴기가 본격화하고서야 위기를 느끼고 있다. 바이든 정부 때 초당적으로 신해양전략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에 조선 협력을 제안한 게 예다. 향후 30년 동안 막대한 연방 정부 재정을 투자해 조선과 해운 산업을 획기적으로 부활시킨다는 게 신해양 전략의 핵심이다. 1조 달러(약 1420조원)가 넘는 예산을 투입해 364척의 군함(함정)을 건조하고, ‘전략적 상선대’를 250척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하루아침에 과거의 해양 강국의 영광을 재현하기란 쉽지 않다. 트럼프가 한국에 조선 협력을 언급한 것도 성과가 날 때까지 공백을 채우기 위한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발등의 불이 떨어진 미국은 이전처럼 한국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한국의 조선 기술과 능력에 손을 내미는 처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 지키도록 하고, 미국은 대만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는 ‘임시 국가방어전략 지침’도 만들었다. 미국의 해상 통제권 확보를 위해 중국과 대결의 핵심이 대만이라는 판단에서다. 필자가 수차 주장한 바와 같이 대만과 한반도 ‘사태’는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이를 대비하는 우리의 준비는 사실상 ‘제로’다. 60년 전에 만들어진 ‘해군가’엔 “바다를 지켜야 강토가 있고, 강토가 있는 곳에 조국이 있다”는 가사가 있다. 그 당시와 많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바다, 특히 해양 주권과 물류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의 절박함은 오히려 더 커졌다. 미국 함정의 정비(MRO)와 건조 등 한국이 우위에 있는 K조선을 앞세운 전략적인 접근과 중장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해기사 등 선박 관련 인력 확충도 뒤따라야 한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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