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탄핵 정권 총리의 출마설

탄핵 정권의 총리가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나오는 것 자체가 상식을 초월한 일. 총리는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게 예의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일을 공고한 이가 자기가 관리해야 할 선거에 나오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상식 초월한 한덕수 대행 차출론
탄핵당한 대통령과 절연 못한 탓
보수정치 고장 나 외부 인물 의존
꼼수보다 원칙 지키는 게 더 나아
탄핵당한 대통령과 절연 못한 탓
보수정치 고장 나 외부 인물 의존
꼼수보다 원칙 지키는 게 더 나아
그동안 여당에서는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전쟁의 한복판에서 나라의 사령탑을 탄핵하려 했다고 야당을 비난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정작 관세전쟁이 막 시작된 시점에 그 사령탑을 대선에 쓰려고 끌어내리는 것도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김문수 장관이나 한덕수 권한대행은 원래 대권 주자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김 장관은 국회에서 계엄에 대해 사과를 거부한 것으로, 한 총리는 탄핵소추에서 생환해 헌법재판관 2인의 지명을 강행한 것으로 갑자기 보수층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여권이 갑자기 닥친 대선에 이렇다 할 전략 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여당의 주류와 강성 지지층이 여전히 탄핵당한 대통령과 심리적인 연(緣)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여전히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경선도 그저 시간이 촉박해 참여하지 않은 것일 뿐, 출마를 위한 사퇴시한인 5월 4일까지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쪽대본이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한 총리의 출마가 열려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경선은 ‘결선’이 아니라 ‘예선’으로 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승전과 예선전은 푯값이 다르지 않은가.
나아가 한 총리를 카드로 쓴다는 발상 자체가 실은 여당의 경선 후보들에 대한 자당의 ‘낮은’ 평가를 자인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자당의 후보들이 경쟁력이 떨어지니 선수를 밖에서 영입할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당의 지도부에도 이를 의식한 듯 당내에서 한 권한대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시키고 있지만, 벌써 경선 이후의 ‘빅텐트’를 생각하는 눈치다. 여당의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도 벌써 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의 반이(反李) 후보들까지 참가하는 빅텐트는 상상하기 힘들고, 결국 한 총리와 이준석, 유승민 등 보수 후보들이 참여하는 작은 텐트가 될 텐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일. 그런데도 그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인 모양이다.
탄핵소추 이후에 여당의 주류는 분위기에 휘말려 지지층의 열기를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지점’에서 결집해왔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되면서 결집은 중심을 잃었고, 열기는 소진되어 다시 불붙이기 힘들게 된 것이다.
여당은 두 번 연속하여 대통령을 탄핵으로 잃고, 대선 역시 두 번 연속하여 당 밖의 인물을 영입하려 한다. 이는 보수정치, 보수정당이 뭔가 크게 고장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출발점은 그 고장 난 부분을 찾아 고치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한 권한대행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정권교체의 의견이 정권연장 의견보다 20%가량 앞서는 상황이다. 다른 후보들에 대한 그의 상대적인 우위도 이 절대적 차이를 극복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가망 없는 선거에서 ‘꼼수’로 이기겠다는 잔머리는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원칙’을 지키는 게 낫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유일한 집권의 전략이고, 단기적으로도 최선의 선거 전술이다.
시대정신이라는 게 있다.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탄핵에 반대한 후보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이기든 지든 여당이 선거를 선거답게 치르기 위한 필요조건은 유권자들에게 탄핵의 강을 건넜다는 신호를 주는 것뿐이다.
설사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으로 탄핵에 찬성한 후보가 승리하는 극적 반전이 연출되더라도, 운동장이 워낙 기울어져 있어 쉽지 않은 선거다. 하지만 최소한 그 작은 성공이 분위기 전환의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여당 지지층의 사기는 떨어져 있다. 지지층에게 다시 투표장에 나갈 만한 기분을 갖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여당이 그 모든 정치적 오류들을 저지른 끝에 이제 올바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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