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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m 캔버스로…안젤름 키퍼, 반 고흐를 오마주하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오마주한 안젤름 키퍼의 2019년 작품. [사진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1853~90), 미술의 수퍼스타다. 이름뿐 아니라 굴곡진 생애와 대표작까지, 전 세계에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이런 반 고흐와 생존 작가가 함께 전시를 연다면, 이 기회는 그에게 축배일까 독배일까.

80세 생일을 맞은 독일의 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가 그걸 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바로 옆 스테델릭 시립미술관에서 6월 9일까지 열리는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Sag mirwo die Blumen sind)’다. 제목은 독일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부른 노래로 미국 포크의 아버지 피트 시거의 곡을 번안했다.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 아가씨들이 다 따버렸죠. 사람들은 언제 이걸 깨달을까요” 하는 반전 메시지가 담긴 노래다.

전시장엔 반 고흐의 ‘구두’ ‘자화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마른 해바라기 꽃’ 등과 함께 키퍼의 대작들이 걸렸다. 반 고흐의 작고 소박한 그림들이 설치 미술을 방불케 하는 키퍼의 초대형 캔버스와 대조를 이뤘다.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오마주로 키퍼는 가로 8.4m 캔버스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짚을 붙였다. 키퍼의 ‘까마귀’는 거칠고 화려한 금박 바탕에 짚을 붙여 수확을 앞둔 밀밭의 해질녘을 미술관에 옮겨온 듯 표현했다.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 전시 장면. 반 고흐의 ‘구두’가 보인다. 권근영 기자
땅에 누워 잠든 이를 키 큰 해바라기가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그림은 표제곡 속 가사 “무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모두 산화해 꽃이 되었죠”를 떠올리게 한다. 반 고흐의 ‘마른 해바라기 꽃’은 키퍼의 초대형 큰 해바라기 그림과 한눈에 볼 수 있다. 무명의 가난한 화가였던 반 고흐의 그림은 작지만 주눅 들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서른셋 반 고흐가 그린 초라한 ‘구두’도, 노란 물감을 두껍게 칠한 밀밭도 금박을 붙인 키퍼의 큰 그림에 묻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반 고흐와 키퍼였을까. 키퍼는 18세 되던 1963년 받은 미술상 상금으로 네덜란드부터 프랑스까지, 반 고흐의 자취를 좇는 여행을 했다. 반 고흐처럼 구불구불한 선으로 풍경을 스케치했고, 여정에서 만난 인물도 그려봤다. 그러나 이렇게 반 고흐를 따라 그리기만 했다면 오늘날의 키퍼는 없었을 거다. 24세 미술학도 키퍼는 1969년 아버지의 군복을 입고 유럽 전역의 역사적 장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한다. ‘점령’이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를 ‘영웅적 상징’이라는 사진 시리즈로도 만들었다. 전범국의 역사를 잊고 싶어하는 독일에서 그의 행위예술과 사진은 상처를 헤집는 ‘스캔들’이었다. 독일 화단에서 비난 받던 이 젊은 예술가는 해외 기관의 주목을 받았다.

2인전이 마련된 반 고흐 미술관 바로 옆 스테델릭 시립미술관에서는 키퍼의 개인전이 열린다. 2층 계단 4면에 설치된 표제작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가장 여운을 남기는 전시실은 반 고흐 미술관 꼭대기의 작은 방. 반 고흐의 편지화와 함께 18세 키퍼의 여행 드로잉을 함께 걸었다. 반 고흐의 끈기에서 용기를 얻은 화가 지망생은 반골 예술가가 됐다. 이제는 반 고흐를 따라 그린 소싯적 드로잉을 내보여도 흉이 되지 않을 나이, 전시는 80세 화가의 예술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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