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트럼프에 맞서는 미국 최고 대학
[세상만사] 트럼프에 맞서는 미국 최고 대학(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대의 이름은 이 대학 최초의 기부자 이름에서 유래했다. 1636년 미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될 당시는 '뉴 칼리지(New College)'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2년 뒤 존 하버드 목사가 사망하면서 기부한 도서와 재산이 대학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면서 이듬해 1839년에는 하버드 목사의 뜻을 기려 학교명을 아예 '하버드 칼리지'로 바꿨다고 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하버드대가 연방 보조금을 무기로 '대학 길들이기'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는 대학들의 선봉장이 됐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현지시간) 대학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버드대는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트럼프 정부가 요구해온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미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천명한 것이다. 가버 총장은 "어떤 정부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연구와 탐구 분야를 추구할 수 있는지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가버 총장은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며 수정헌법 1조의 권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도 곧바로 성명을 내고 하버드대에 22억 달러(약 3조1천억원) 규모의 보조금과 6천만 달러(약 854억원) 규모의 계약을 중단한다는 발표로 응수했다. 하버드대가 수십억 달러의 재정 지원 삭감을 감수하면서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결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앞서 뉴욕의 명문 컬럼비아대는 보조금 삭감 압박에 굴복해 반이스라엘 시위 통제 같은 정부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키로 했다.
하버드대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으로 불릴 정도로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이 많기로 유명하다. 트럼프 정부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기금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미언론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 기준 하버드대의 기금은 532억달러(약 76조원) 규모다. 하나의 대학이 조성한 기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규모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기금이 많은 사립대인 예일대(414억달러)와도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삭감된 정부 보조금을 기금으로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부금마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사용처가 제한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하버드대 간 충돌은 점점 격화될 조짐이다. 트럼프 정부가 보조금 삭감에 이어 대학의 '면세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했다. 대학이 면세 지위를 잃게 되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어 기부금이 많은 하버드대는 더욱 큰 재정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하버드대는 최근 정부의 압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7억5천만달러어치의 채권도 발행했다고 한다. 국가 권력의 압력에 맞서 대학의 독립성과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미국 최고(最古) 대학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주목된다. 그 결과가 어떻든 대학이 탄탄한 기부금 기반을 바탕으로 이런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정부 예산 지원에 목멘 한국 대학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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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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