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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안젤름 키퍼와 소박한 반 고흐…'예술 차력쇼' 벌어진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캔버스에 유채, 50.5x103㎝. 사진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1853~90), 미술의 슈퍼스타다. 이름뿐 아니라 굴곡진 생애와 대표작까지, 전 세계에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이런 반 고흐와 생존 작가가 함께 전시를 연다면, 이 기회는 그에게 축배일까 독배일까.

안젤름 키퍼, 밤의 밀밭, 2019~21, 캔버스에 에멀전ㆍ유화ㆍ아크릴ㆍ금박ㆍ짚ㆍ흙ㆍ철, 380x570㎝, ⓒ안젤름 키퍼. 사진 반 고흐 미술관

80세 생일을 맞은 독일의 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가 그걸 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바로 옆 스테델릭 시립미술관에서 6월 9일까지 열리는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Sag mirwo die Blumen sind)’다. 제목은 독일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부른 노래로 미국 포크의 아버지 피트 시거의 곡을 번안했다.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 아가씨들이 다 따버렸죠. 사람들은 언제 이걸 깨달을까요" 하는 반전 메시지가 담긴 노래다.

안젤름 키퍼, 별이 빛나는 밤, 2019, 캔버스에 에멀전ㆍ유채ㆍ아크릴ㆍ짚ㆍ금박ㆍ나무ㆍ철사, 470x840㎝. ⓒ안젤름 키퍼. 사진 반 고흐 미술관

전시장엔 반 고흐의 ‘구두’ ‘자화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마른 해바라기 꽃’ 등과 함께 키퍼의 대작들이 걸렸다. 오랜 세월 이걸 신었을 이의 분신과도 같은 낡은 구두, 화가의 이른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까마귀와 씨가 맺힌 말라 비틀어진 해바라기 등 반 고흐의 작고 소박한 그림들이 설치 미술을 방불케 하는 키퍼의 초대형 캔버스와 대조를 이뤘다.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오마주로 키퍼는 가로 8.4m 캔버스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짚을 붙였다. 키퍼의 ‘까마귀’는 거칠고 화려한 금박 바탕에 짚을 붙여 수확을 앞둔 밀밭의 해질녘을 미술관에 옮겨온 듯 표현했다.

안젤름 키퍼. 사진 서머 테일러

땅에 누워 잠든 이를 키 큰 해바라기가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그림은 표제곡 속 가사 "무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모두 산화해 꽃이 되었죠"를 떠올리게 한다. 키퍼는 여기 직접 재배한 해바라기 씨를 붙였다가 벌레가 꼬여서 인공 씨앗으로 바꿨다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반 고흐의 ‘마른 해바라기 꽃’은 키퍼의 초대형 큰 해바라기 그림과 한눈에 볼 수 있다. 무명의 가난한 화가였던 반 고흐의 그림은 작지만 주눅 들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서른셋 반 고흐가 그린 초라한 ‘구두’도, 노란 물감을 두껍게 칠한 밀밭도 금박을 붙인 키퍼의 큰 그림에 묻히지 않는다.

반 고흐의 ‘구두’(오른쪽)과 함께 보이는 안젤름 키퍼의 ‘라임 나무 아래서’(2019). 암스테르담=권근영 기자

그렇다면 왜 반 고흐와 키퍼였을까. 키퍼는 18세 되던 1963년 받은 미술상 상금으로 네덜란드부터 프랑스까지, 반 고흐의 자취를 좇는 여행을 떠났다. 휴가를 즐기지 않는 부모 덕에 난생 처음 떠난 여행이었다. 반 고흐처럼 구불구불한 선으로 풍경을 스케치했고, 여정에서 만난 인물도 그려봤다. 이때의 여행 일기도 상을 받으며 잡지에 실렸다. 그러나 이렇게 반 고흐를 따라 그리기만 했다면 오늘날의 키퍼는 없었을 거다.

반 고흐의 ‘마른 해바라기 꽃’(왼쪽)과 함께 보이는 안젤름 키퍼의 ‘솔 인빅투스’(1995).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은 태양’을 뜻한다. 암스테르담=권근영 기자

24세 미술학도인 키퍼는 1969년 아버지의 군복을 입고 유럽 전역의 역사적 장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한다. ‘점령’이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는 동시에 ‘영웅적 상징’이라는 사진 시리즈로도 만들었다. 전범국의 역사를 잊고 싶어하는 독일에서 그의 행위예술과 사진은 상처를 헤집는 ‘스캔들’이었다. 독일 화단에서 비난 받던 이 젊은 예술가는 해외 기관의 주목을 받았다. 스테델릭 또한 히틀러가 유럽 점령 계획을 세웠던 베를린의 제국 수상관저의 방을 그린 ‘실내(Innerraum, 1981)’ 등 일찌감치 키퍼의 작품을 소장했다.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시립미술관 계단에 설치된 ‘꽃들은 어디로 갔나’(2024). 사진 스테델릭 시립미술관

2인전이 마련된 반 고흐 미술관 바로 옆 스테델릭 시립미술관에서는 키퍼의 개인전이 열렸다. 2층 계단 4면에 설치된 표제작 ‘꽃들이 다 어디 갔나요’가 압도적이다. 대형 캔버스에 그대로 붙인 제복들이 전쟁에 희생된 이들의 부재를 증명하고, 이들을 진혼하듯 꽃잎이 캔버스부터 바닥까지 가득 흩뿌려져 있다. 땅에 누운 채 가슴에서 꽃나무를 키워내는 사람은 화가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젊은 시절 전쟁을 기억하라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벌였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제목과 작품으로 반전 메시지를 드러냈다. 낫과 도끼를 통째로 붙인 캔버스, 추락한 비행기 모양의 설치 등은 폐허 이후를 암시하는 듯한 키퍼의 스케일을 보여준다.


안젤름 키퍼, 뒤몽 씨, 1963, 종이에 목탄과 잉크, 34.5x22.5㎝. 사진 반 고흐 미술관

그러나 가장 여운을 남기는 전시실은 반 고흐 미술관 꼭대기의 작은 방. 반 고흐의 편지화와 함께 18세 키퍼의 여행 드로잉을 함께 걸었다. 전시는 2019년 키퍼가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반 고흐와 관련된 강연을 한 이듬해인 2020년 기획됐다. 이때 강연에서 키퍼는 "재능이 없어 목사 되길 그만뒀다는 반 고흐가 어떻게 화가는 됐을까? 화가는 재능 없이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돌아봤다. 이는 반 고흐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얘기 같다.

반 고흐의 끈기에서 용기를 얻은 화가 지망생은 반골 예술가가 됐다. 반 고흐처럼 요절했다면 그저 모사 잘 하는 화가로 남았을까. 이제는 반 고흐를 따라 그린 소싯적 드로잉을 내보여도 흉이 되지 않을 나이, 전시는 80세 화가의 예술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 키퍼는 암스테르담 전시와 동시에 지난달 31일부터 오는 6월 22일까지 일본 교토(京都) 니조성에서도 개인전 ‘솔라리스’(SOLARIS)를 열고 있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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