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브뤼셀의 창] 중국과 거리 두던 유럽,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밀착 모드’로

EU와 중국은 미국의 관세 전쟁이 확전하지 않게 해 세계 경제의 안정에 보탬이 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통상 전쟁이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려 했던 유럽을 다시 중국에 다가서게 한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전기차
중국과 통상 협력 가능성 충분
인권 문제와 충돌은 EU 딜레마
중국과 통상 협력 가능성 충분
인권 문제와 충돌은 EU 딜레마
지난해 말 EU는 중국과의 상품 교역에서 3045억 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과의 상품 무역은 2356억 유로의 흑자를 냈다. 즉 대중국 무역 적자를 미국과의 무역 흑자로 메우는 셈이다. 트럼프가 대중국 관세를 125%로 더 올린 지난 9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의 리창 총리와 장시간 통화했다. 집행위원회는 EU의 행정부 역할을 수행하며 27개 회원국을 대표해 통상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다.

EU는 중국산 전기차가 과도한 보조금을 받았다며 지난해 10월 말부터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관세 전쟁으로 EU는 이 관세 인하를 검토 중이며 중국 기업의 유럽 현지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나섰다. 중국 기업이 유럽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2차 전지 특허를 보유한 중국의 CATL에게 관련 지식재산권을 유럽 각국으로 이전하기를 요구한다. 전기차 확대에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EU-중국 관계 정상화 50년
게다가 올해는 EU와 중국의 관계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다. EU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브뤼셀로 초청해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는 유럽의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이후 재건 사업에서도 EU와 중국은 서로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 중국은 벌써 우크라이나 정부와 접촉해 전후 재건 사업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6월 말 우크라이나와 가입 협상을 개시했고 100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군사 및 경제 지원을 제공해왔다. 전후 복구 사업에도 EU의 예산 지원은 물론이고 독일과 프랑스 등 회원국 기업이 참여를 준비 중이다. 유럽이 주도할 수 있는 재건 사업에서 중국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들과 협력할 수 있다.
물론 중국과 유럽의 통상 관계 강화는 규범적 권력으로서 EU의 이미지를 손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럽이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중국 시장을 더 공략하고 중국의 유럽 투자를 추가로 확대해야 한다. 트럼프 발 관세 전쟁으로 단일 화폐를 쓰는 유로존의 경제 성장률은 다시 하향 조정됐다. 투자은행 ING는 최근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0.7%에서 0.6%로, 내년 전망치는 1%로 0.4%포인트 인하했다. 관세 전쟁이 내년 성장률을 더 크게 끌어내리는 것이다.

EU 회원국 상당수가 경제 성장을 위해서 무역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반면 미국은 내수 비중이 크고 국내 시장이 커 무역 의존도가 주요 7개국(G7) 회원국 중 가장 낮다. 대외 의존적인 경제 구조 때문에 경제 성장에 매진해야 하는 EU가 이전처럼 신장 지구나 홍콩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드러내놓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제 성장 위해 무역 확대 필수인 EU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통상 정책은 EU 집행위원회의 권한이기에 EU 회원국이 단일 정책으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 반면 외교 안보는 회원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유럽 통합을 견인해 온 독일과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대중국 유화 정책을 선호해왔다. 반면에 발트 3국은 대중국 강경 정책을 견지해왔다. 그렇기에 외교 안보 정책에서 회원국의 중국에 대한 상이한 정책은 계속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EU의 딜레마가 있다.
EU는 2년 전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며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을 제시했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처럼 중국과 교역을 중단할 수는 없지만 희토류 등 의존도가 높은 품목부터 시작해 ‘필수 원자재법’을 만들어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했다. 그런데 트럼프발 충격으로 EU는 이제 중국과 리커플링(Re-coupling·재동조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경제적 이익 증진과 규범적 권력으로서 위상 유지 간의 적절한 균형 잡기가 EU의 큰 과제로 떠올랐다.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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