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마음 읽기] 봄날의 일

모종 심으며 한 계절 돌볼 생각
풀 뽑을 때는 잡념도 같이 뽑아
마음 쓰는 일 살피게 되는 봄날
풀 뽑을 때는 잡념도 같이 뽑아
마음 쓰는 일 살피게 되는 봄날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대파를 뽑아서 내 집에 갖다 주었다. 한꺼번에 먹지 않고 두고 먹을 것 같으면 밭에 묻었다 조금씩 뽑아 먹어도 좋다고 해서 반을 덜어 흙을 파서 묻어 두었다. 대파를 심고 밭 가에 앉아 있으니 먼 곳에서 꿩이 우는 소리가 들려 왔고, 해가 많이 길어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봄날의 해 질 무렵은 내게 조금은 묘하고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하곤 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봄날의 해 질 무렵은 푸릇푸릇한 기운이 있으면서 동시에 맥이 풀리고 한없이 나른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었다. 옛것과 옛사람이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인데, 이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등에 대해 지금껏 누구와도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어쨌든 봄날이 시작되었구나, 라고 낮게 중얼거리며 퍼질러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봄날이 시작되면서 어떤 지인은 하귤을 따서 하귤청을 담아 내게 선물로 주었고, 어떤 지인은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동영상으로 담아 보내왔다. 잘 익은 하귤의 빛깔과 향기에서 잠시 봄을 느낄 수 있었고, 강물이 흐르는 그 유동(流動)의 기운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봄날의 일 가운데에는 풀을 뽑는 일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에서 풀을 뽑고, 마당에 돋은 풀도 뽑는다. 호미로 풀을 뽑는 시간은 비교적 마음에 소란이 없다. 반복되는, 단순한 노동이므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일만을 하면 된다. 그런데 풀을 뽑는 일을 자꾸 하다 보니 풀을 뽑는 동안에도 점차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고 심지어 시끄럽고 어수선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풀을 뽑으면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 요 며칠 동안에는 풀을 뽑으면서 ‘이것은 욕심의 풀이다’라고 생각하고 풀을 뽑았고, ‘이것은 화를 내는 마음의 풀이다’라고 생각하고 풀을 뽑았고, ‘이것은 어리석음의 풀이다’라고 생각하고 풀을 뽑았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잡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지며 순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교하는 생각과 집착하는 생각을 약간은 뒤로 물릴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에 집중해서 머무를 수 있었다.
최근에 한 스님을 찾아뵈었더니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맥락 없이 스님의 말씀을 옮기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어린이가 착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견주지 않고, 차이를 대어 본 후 간택(揀擇)하지 않고 어떤 존재에 대해서 신뢰와 사랑을 온전히 보내는 일에 대해 이르신 것이었다. 이 말씀은 마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궁리하게 했다.
언젠가 읽었던 불교 경전에는 “뜻에 맞지 않는 것과 만나고, 뜻에 맞는 것과 헤어지면서 울고불고 떨구며 흘린 눈물이 많겠느냐, 대양의 바닷물이 많겠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 질문도 어쩌면 비슷한 궁리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뜻에 맞는 것과 뜻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분간하는 마음이 괴로움과 아픔을 낳고 그리하여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생(生)을 거듭하여 살면서 흘린 눈물의 양이 바닷물보다 많을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경계의 가르침이었다.
작물의 모종과 어린 묘목과 끝없이 돋는 풀과 더불어 봄의 계절을 앞으로 살아갈 것인데, 내 마음을 어떻게 간수하며 살아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봄날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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