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속 '반미 세몰이' 나선 시진핑…딜레마 빠진 동남아(종합)
시진핑 순방으로 '새우등' 신세…미중 모두에 의존도 커 中 "美 관세 괴롭힘에 함께 맞서자"…동남아, 레드카펫 깔면서도 균형잡기 진력
시진핑 순방으로 '새우등' 신세…미중 모두에 의존도 커
中 "美 관세 괴롭힘에 함께 맞서자"…동남아, 레드카펫 깔면서도 균형잡기 진력
(하노이·서울=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손현규 권숙희 기자 = 글로벌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 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남아 순방에 들어가며 '반미 세몰이'로 우군 확보에 나서자 당사국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시 주석이 오락가락 관세 정책으로 세계 시장을 혼란에 빠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에는 이에 공동 대응하자면서 적극적으로 '틈새 공략'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동남아 국가들은 주요 2개국(G2) 경제전쟁에 휘말려 의도하지 않은 타격을 받을 위험과 함께 한쪽을 편들다가 다른 편을 자극할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미중 간 '고래 싸움'에 괜히 '새우등' 터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커진 이들 국가는 양국 사이에서 고도의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 셈이다.
◇ 中, 동남아 향해 팔 벌리며 "우린 운명공동체"
시진핑 주석은 전날 주요 교역국이자 국경을 맞댄 베트남을 1박 2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이어 오는 15∼18일에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도 잇따라 찾는다.
시 주석은 2023년 12월 마지막으로 베트남을 찾았으며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방문은 각각 9년과 12년 만이다.
이 같은 이례적 방문의 목적은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데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순방에 앞서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는 주변국들과 운명 공동체 구축이라는 외교 방침을 재천명했다.
이들 지도부는 지난 8∼9일 주변국과 외교 문제를 다루는 '중앙주변공작회의'를 통해 주변국들과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공급망 협력을 확대한다는 외교 방침을 발표했다.
시 주석은 "주변국 운명 공동체 구축에 집중하고, 주변국 업무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올해 첫 해외순방인 동남아 3개국 국빈 방문은 당초부터 예정됐던 것으로 보이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면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고 AP통신은 짚었다.
시 주석은 전날 하노이에서 럼 서기장, 팜 민 찐 총리 등 베트남 최고 지도부와 만나 "중국과 베트남은 일방적 괴롭힘 행위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며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와 산업·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등 베트남 지도자들은 관세 등 미국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과 철도 등 산업·기술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미국으로부터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 경로로 낙인이 찍혀 46%라는 초고율 상호관세의 표적이 된 베트남의 조심스러운 행보로 풀이된다.
◇ '난 트럼프와 달라·미국은 불량국가'…차별화 나선 시진핑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해 중국이 동남아 국가에 안정적 파트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세계 경제에 충격을 안긴 미국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관측된다.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티븐 올슨 객원 선임 연구원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중국은 규칙에 기반을 둔 무역 체제의 책임 있는 리더로 자국의 위치를 설정하면서 미국을 무역 관계를 망치려는 '불량 국가'로 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원티 성 비상임 연구원도 CNN에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경제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중국의 입지를 다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고 외교 정책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으로 불안해하는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 연구원은 "시진핑이 몸소 찾아가 보여주려는 것은 겁주기와 압박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그 과정에서 새 무역합의나 전략적 관계 갱신 같은 일부 '기념품'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이날 또 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 묘소를 방문해 헌화도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는 미중 모두에 자국 무역 관계가 크게 노출된 동남아 국가들에는 단순한 구애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섣불리 중국과 손을 잡았다가는 중국 견제를 위해 국가 전략을 총동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노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이러한 행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해 경제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그들은 오늘 만났는데 그 만남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국을 망치게(screw) 할까'를 파악하기 위한 것 같다"면서 "나는 그런 회담을 열었다는 이유로 중국이나 베트남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 이언 총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접근 방식은 동남아 각국 경제 같은 중간자의 공간이 줄어들 수 있음을 뜻한다"면서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 "시진핑 환영하되 트럼프 자극 않아야"…딜레마에 빠진 동남아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주요 제조업 생산기지이자 교역 상대다.
동시에 이들 국가는 미국을 거대 수출 대상으로 삼으며 해외투자와 안보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중국만큼이나 미국에 대한 노출이 적지 않기 때문에 반미연대에 가세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특히 시 주석의 순방 이후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은 정치·경제적 계산에 따라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고 '줄타기'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가디언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며 이번 관세 전쟁에서도 두 국가 중 한쪽과 적대적 관계를 맺는 상황은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NN도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이 이번에 시 주석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환영하겠지만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해 시 주석 순방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첫 방문국인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중국 부품과 원자재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3번째로 큰 외국인 투자 국가다.
베트남은 중국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최근 미국의 요구에 따라 자국을 통한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을 단속하고, 민감 품목의 대중국 수출 통제도 강화할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베트남 항공사의 중국산 여객기 도입 같은 선물도 내놓으면서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과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뚜렷이 밝혔다.
베트남은 모든 주요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베트남 특유의 '대나무 외교'를 통해 미중 어느 한쪽의 눈 밖에 나지 않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도 중국과 갈등 중인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면서도 미중 갈등에 연루되는 상황은 막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동맹국으로 최근 해군 기지 자금을 지원받은 캄보디아는 대미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예 기간이 끝나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해야 한다.
동남아 전문가인 재커리 아부자 미국 국방대 교수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는 각국에 대한 '사형 집행 유예'라며 "그 나라들은 여전히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신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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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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