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해야하니 재판 빼달라"…대선 주자들 특권인가[현장에서]

" 이런 식이면 또 1년이 지연된다 "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의 재판장인 장찬 부장판사는 14일 열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39차 공판에서 이렇게 한탄하듯 말했다. 이날 재판에 여러 피고인뿐만 아니라 신문이 예정된 증인들이 무더기로 출석하지 않으면서다.
피고인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재판이 시작한 지 3분 만에 이석했다. 재판장이 “오전 재판만 하겠다”며 이석을 만류했지만, 나 의원은 “대선 경선에 참여해 재판 참석이 어렵다”며 자리를 떴다. 나 의원의 다음 공식일정은 4시간 뒤 서울 서초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었다.
재판이 열리기 불과 20분 전, 나 의원은 법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게 “송달을 받지 않거나 재판부를 기피하거나 증인 출석을 고의로 하지 않는 등 사법을 방해하는 데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개선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론하면서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이날 재판에 이석하면서 그가 남긴 말은 낯 뜨거울 정도로 공허하게 들렸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은 1심만 5년 4개월째다.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공직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충돌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당직자 27명, 민주당 의원·당직자 10명이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진 게 지금까지 끈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시작되고 대권 주자들의 출사표도 잇따르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대권 주자에 나선 상당수는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이 전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 등 5개 재판에서 여전히 피고인 신분이다. 최근 대권 주자로 급등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은 내란 방조 혐의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수차례 받았다. 지난 10일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가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관련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가진 것 없는 깨끗한 손”을 강조했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 2심에서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고, 오는 24일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여러 정치인들이 대선에 뛰어들면서 진행되고 있는 수사에 어떻게든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은 “유력 정치인을 수사할 경우 여기저기서 푸쉬(압력)가 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수사기관의 최종 판단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겠지만,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다소 지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나 의원은 대선 경선 등의 이유로 자유한국당 패스트트랙 재판에 대한 변론 분리를 신청했다. 지난 8일엔 이 전 대표가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 사건 재판에서 “다음달 선거 유세가 있으니 재판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들이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지난달 10일 재판, 자유한국당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부) “이미 너무 많이 빠졌다”(지난 8일 재판,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 사건 재판부) 등 지적이 나올 정도로 정치인들은 재판 지연 전략을 전매특허처럼 남용하고 있다.

이찬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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