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월마트 주총은 축제…가수까지 초대, 주주와 화합의 장 [K주총의 그늘]

미국 최대 마트 월마트는 주주는 물론 임직원 간의 화합을 위한 장으로 주총을 활용한다. 과거 대규모 체육관에서 유명 가수 등을 초대해 축제 같은 주총을 운영해 왔고, 2018년부터는 ‘주총 주간’으로 행사를 키웠다. 안건 투표를 진행하는 주총일을 포함한 일주일간 콘서트·상품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주주뿐 아니라 전 세계 수천 명의 직원도 참여한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의 주총엔 주주들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이들이 회사에 내놓는 주주제안 주제도 다양하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주총에서는 비트코인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자는 안건이 상정됐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국립공공정책연구소(NCPPR)가 제안한 것이었다. MS 주총에서는 부결됐지만, NCPPR 측은 앞으로 다른 기업들에도 비트코인 투자와 관련한 제안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선 그간 관행적으로 운영해온 주총 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중앙일보에 주총 소집 통지 기간을 확대하고 특정일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은 물론, 실질적인 주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보다 과감한 변화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우선 충분한 안건 검토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14일에 불과한 주총 소집 통지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기업거버넌스협회(ACGA)의 스테파니 린 한국·싱가포르 총괄연구원은 “한국은 통지 기간이 짧다 보니 외국인 투자자는 실질적인 검토 시간이 보통 3~5일밖에 안 된다”라며 “상법 개정을 통해 (ACGA 권고 기준인) 28일 전까지 소집 통지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49개국 중 최소 통지 기간이 14일 이내인 경우는 한국(14일), 일본(14일), 뉴질랜드(10일), 칠레(10일) 등 4개국에 불과했다. 가까운 아시아 국가 중 중국(20일), 홍콩(21일), 말레이시아(21일), 싱가포르(21일·특별결의안 기준), 인도네시아(22일) 등은 모두 한국보다 길다. 미국은 온라인으로 공고할 경우 최소 40일 전엔 통지해야 한다.
3월 말에 집중된 주총 개최 시기를 4월 이후로 분산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 린 연구원은 “많은 기업들이 같은 날에 주총을 개최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참여가 제약된다”고 지적했다. 대만은 ‘쿼터제’를 운영해 상장기업의 정기 주총 개최를 하루 100회로 제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상장기업 주총 모범 관행 가이드’를 통해 대형 상장사의 경우 미리 주총 일정을 알리도록 하며, 거래소는 다른 주요 상장사와 일정이 겹치지 않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법상으로도 기업들이 4월 이후 주총을 개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늦게 개최했을 때 실익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여전히 3월 말을 선호하는 것이 문제”라며 “주총 일정을 강제 분산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소집 통지 기간을 늘려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 충분한 안건 검토 시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산 개최에 따른 제도적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발적인 유도를 위해서다. 김춘 한국상장사협의회 본부장은 “예컨대 삼성전자와 같은 분기 배당을 시행하는 기업의 경우, 주총을 4월 이후에 개최한다면 1분기 배당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며 “분산 개최 필요성은 크지만, 이에 따른 리스크를 낮춰주기 위해 배당, 이사 임기,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등 연계되는 제도 전반에 대한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이를 위해 린 연구원은 ▶외국인 주주 참여를 위한 절차 간소화 ▶이사회 의장 및 사외이사의 주총 참석 의무화 ▶질의응답(Q&A) 시간 보장 ▶표결 결과의 신속한 공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금지된 주주이익 공여, 이른바 ‘주주 우대제’를 부분 허용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과 같이 ‘축제’ 같은 주총을 만들자는 과감한 주장도 나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결국 일반 주주들이 주총에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예전엔 주총에 참석하면 소액 기념품을 주거나 간단한 식사를 제공했는데, 지금은 다과만 제공해도 현행법상 이익을 제공한다며 규제 대상이 된다. 주주들이 주총을 보다 축제처럼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기존 관행을 깨려는 변화의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2년째 ‘열린 주주총회’를 지향해 주주가 아니어도 주총장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올해 LG전자 주총에서도 주주 명부에 없더라도 신분증만 제시한다면 제한 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온라인 생중계와 동시통역도 제공해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린 연구원은 “LG전자의 시도는 투명성 제고와 소통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나상현.김기환.최선을.노유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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