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제주 4·3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망각"
제주 4·3 세상에 꺼낸 소설 '순이 삼촌' 세계기록유산에 포함 "여전히 외면하는 국내 시각 교정 계기되길"
제주 4·3 세상에 꺼낸 소설 '순이 삼촌' 세계기록유산에 포함
"여전히 외면하는 국내 시각 교정 계기되길"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1978년 소설 '순이 삼촌'을 집필했을 때 현기영 작가의 바람은 그저 말하지 못하는 제주 4·3의 역사를 지워지지 않을 글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을 시간이 흘러 제주 4·3의 역사는 이제 혼자 싸워 지켜내야 하는 기록이 아니라 세계의 유산으로 남게 됐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주 4·3 특별전에서 만난 현 작가는 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소식에 그저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제주 출신인 현 작가는 군부독재 시기인 1978년 금기를 깨고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제주 4·3 이야기를 담은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했다.
입 밖에 잘못 냈다가는 '빨갱이'로 내몰릴까 봐 모두가 쉬쉬하던 제주 4·3 사건을 소설에 녹여 처음 세상에 끄집어냈다. 그 일로 현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쉽지 않은 길이 될 걸 알았다. 그래도 펜을 집어 든 건 역사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현 작가는 "펜대를 가졌다는 건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도 있다는 것"이라며 "당시 제주도민이 앓고 있는 4·3 트라우마를 말도 못 하고 기록도 못 하는 상황에서 내가 기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게 됐다"고 했다.
현 작가에게는 어떤 사건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사건은 존재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제주 4·3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있다가 사라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제주 4·3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제주 4·3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순이 삼촌'을 쓸 때만 해도 먼 훗날 진상규명이 이뤄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되면서 비로소 제주 4·3 사건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 작가는 "무서워서 기록도 못 하고 발설도 못 하는 그런 세월을 반세기 이상 지내오다 조금씩 4·3에 대해 기록하게 됐고 생존자들도 말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기록들이 모여 4·3 사건 발생 77주년 만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됐다는 점을 평가받아 문학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이번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됐다.
현 작가는 "제주 4·3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며 "여전히 4·3을 외면하고 불온시하는 국내 시각들을 교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아픔의 역사인 제주 4·3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 작가는 "세계 도처에 아직도 전쟁이나 대량학살이 자행되고 있는데 4·3의 참상을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은 안 된다, 전쟁은 많은 생명을 앗아간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열리는 4·3 특별전도 그래서 현 작가에게는 중요한 교육과 역사의 현장이다.
"대량학살, 제노사이드는 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없어지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게 인간 사회이고 인간 심리죠. 그래서 이런 행사나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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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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