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문정희 시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새긴 시는?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2013년 작고), 노벨상 후보로 단골 거론되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스페인어권의 부커상에 해당하는 세르반테스상을 받은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가모네다…. 자국 언어로 돌에다 시를 새기는 특권을 허락받은 18개 언어권 18명의 시인 가운데 한국 시인도 포함돼 있다. '거침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은 문정희(78) 시인이다. 중국이나 일본 시인은 없다.


스페인 돌에 한글로 새긴 작품은 단 세 줄로 이뤄진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나뿐인가/ 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
"지금까지 2000편 넘는 시를 썼고, 시간 촉박한 즉흥시도 많이 썼지만 이번 시 쓰기는 특히 힘들었다고 제막식에서 밝혔다"고 전했다. "수백㎞를 걸어 종착점에 도달한 이에게 가장 절박한 언어가 무얼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은가, 이런 질문이 아니겠나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문 시인은 현지 독자들도 만났다.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과 포르투갈의 리스본 대학 등에서의 문학 강연에서다. "근대 작가 김명순과 나혜석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수난을 소개한 후 노벨상을 받은 한강까지 연결시켰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성 작가는 글을 쓰는 고통뿐 아니라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를 관통하며 역사와 사회에서 밀려난 타자로서의 고통 또한 감내해야 했는데, 요즘 젊은 여성작가들에도 그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고 소개했다.
특히 "돈을 받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스페인의 '플라니데라(Plañidera)'와 비슷한 곡비(哭婢·양반을 대신해 곡하던 계집종)라는 존재가 한국에도 있다고 하자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어딜 가나 청중의 80~90%가 여성이어서 스페인에서도 여성이 문화 수용의 중심임을 실감했다고 한다.

새 시집에서 문 시인은 시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의 비명소리'에 빗댔다. 여전히 싱싱한 작품을 쓰는 비결을 묻자 "좋은 가르침이나 이론서에서 배운 것들을 모두 던져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때로는 그것들이 다 도움이 된다. 억지로 쓰지 말고 쓰고 싶은 충동이 일 때 써야 하는데, 그 충동을 모시는 일이 쉽지 않다. 여행도 다니고 연애 감정도 살려보고, 발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껴보기도 한다"고 했다.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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