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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최근 몇 달간은 작가 한강에 푹 빠져 지냈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어 작가 스스로 대표작이라 일컫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나는 2014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를 읽다가 책 내용이 너무 무겁고 잔인해서 덮어 두었었다.  
 
한강의 작품은 치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애틋한 사랑이 있다. 이 책은 197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세대에게는 조국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아픈 역사 공부가 된다. 지금은 초고속으로 성장한 한국이, 조국을 떠나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든든하고 자랑스럽지만, 지금이 있기까지 대한민국은 많은 아픔과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소설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0년 1월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2014년에 완성된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많은 기록과 자료, 신문에 실린 사진, 검열에서 지워진 빈 문장들을 마주하게 되고 인터뷰하는 중에도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화자의 관점에서 경험한 사건을 적는다.  
 
제1장에서는 중학교 3학년인 동호가 친구 정대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정대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도망친다.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 수습을 돕다가 결국 거기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제2장은 죽은 정대가 자기 몸을 떠나지 못하고 혼이 되어 부패해 가는 자기 몸을 보게 되고 얼마 후 군인들이 자신을 포함한 시체들을 쌓아놓고 불태운다. 자기 몸 주위를 떠돌던 정대의 혼은 자신의 시체가 타버리자 비로소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간다.  
 
제3장은 겨우 살아남은 은숙이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불온한 희곡작가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7대의 따귀를 얻어맞는다. 은숙은 민주화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하며 따귀를 맞아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보다 훨씬 큰 죄책감에 더욱 시달린다.  
 
제4장에서 김진수는 총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후 출소했으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결국 자살한다.  
 
제5장에서 선주는 경찰에 연루되어 그녀가 당한 고문에 대해 어느 작가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30cm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고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 그 후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 수혈을 받게 했다. 2년 동안 하혈은 계속되었고 타인 기피증, 특히 남자 기피증으로 자기 몸을 증오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도피했다는 사실을 차마 증언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신체적 정신적 폐인이 된다.  
 
제6장에서 동호 어머니는 동호가 죽기 전 동호를 데리러 도청에 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아들을 그리워하며 죄책감에 하루하루 겨우 연명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모두 6명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겪은 잔인무도한 고문과 참혹한 현장을 서술하고 양심을 짓누르는 죄책감으로부터 폐인이 되어가는 아픈 과정을 그렸다.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무도한 비인간적인 폭력이 학살자 전두환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의 명령을 따르는 군인이나 경찰도 결국 광주 시민의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작가는 제한된 지면에 함축된 그녀만의 독특한 시적 감각으로 날카롭지만 포근하게 독자를 울린다.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조국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피 흘린 대가로 얻은 귀한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다시 한번 역사의 장을 돌이켜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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