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온 산이 불쏘시개로 덮여…내륙 야산 불이 가장 위험”
산불 현장 600곳 누빈 전문가의 경고

지대 낮을수록 산불 확산 빨라져
내륙에서 동해까지 수십㎞ 간다
산불 대응책 근본적 변화 시급해
10만 의용 소방대 적극 활용해야
바짝 마른 나무·낙엽은 인화 물질
울창한 숲이 기후변화보다 위험
내륙에서 동해까지 수십㎞ 간다
산불 대응책 근본적 변화 시급해
10만 의용 소방대 적극 활용해야
바짝 마른 나무·낙엽은 인화 물질
울창한 숲이 기후변화보다 위험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에서 일주일째 산불 피해 현장을 조사하던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을 이곳에서 만났다. 그는 “전날(지난달 27일) 비가 조금 내리면서 습도가 높아지고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서 산불의 기세가 꺾였다”며 “따뜻한 남서풍이 부느냐, 차가운 북서풍이 부느냐는 산불 확산과 진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황 소장은 지난 12년간 전국 600여 곳의 산불 현장을 발로 뛰며 산불 발생 원인과 확산 과정, 효율적인 진화 대책 등을 연구한 민간 산불전문가다. 산림학 박사인 그는 산림청 산불방지교육 강사로 전국 소방서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1300회 이상 산불예방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황 소장은 “그동안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산불 대응을 위한 국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공공 일자리 사업으로 진행하는 산불 진화대원의 고령화가 대표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불 대응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 소장과의 일문일답.
따뜻한 남서풍에 산불 피해 커져
Q : 이번 의성 산불은 피해 면적에서 역대 최악이다. 피해가 커진 이유를 뭐로 보나.
A : “먼저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 강원도 동해안에서 큰 산불이 여러 번 난 적이 있다. 그런데 동해안 산불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바다에 막히기 때문에 피해 면적이 제한적이다. 이번 산불은 바다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경북 내륙의 낮은 야산 지대에서 발생했다. 이런 산불이 가장 위험하다. 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가면서 상승 기류를 타기 때문에 매우 강하고 빠르게 번져 나간다. 산불 발생 지점이 서쪽 내륙일수록, 지대가 낮을수록 산불 확산의 위험이 커진다고 봐야 한다.”
Q : 의성은 내륙 지역인데 결국 동해안까지 불이 번졌다.
A : “초기부터 이번 산불이 경북 영덕 해안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괜히 오버하는 게 아니냐’는 핀잔도 들었다. 의성에서 영덕까진 직선거리로 약 80㎞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역대 우리나라 산불 가운데 그런 전례가 없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에 비춰 이번 산불은 쉽게 잡을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불 바람’이 분다고 할 정도로 산불이 남서풍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기 때문이다.”
Q : 초기엔 산불이 잡히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재발화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A : “처음 하루 이틀은 산불의 위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때는 산에 눈도 조금 쌓여 있었다. 눈으로 관찰하면 붉은 불꽃보다는 희뿌연 연기가 많이 보였다. 연료가 완전히 타지 못하고 불완전 연소가 됐다는 얘기다. 그게 위험한 신호였다. 완전 연소가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불이 붙지 못한다. 그런데 불완전 연소가 이뤄지면 수분이 증발한 상태에서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재발화 위험이 커진다. 그 무렵 따뜻한 남서풍이 강하게 불어왔다. 그때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진화대원 고령화에 사기도 침체

Q : 우리나라는 산불 대응을 위한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A : “2017년이 중요한 고비였다. 대선을 사흘 앞두고 강원도 강릉과 삼척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주요 정당 후보들이 일제히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다양한 산불 대책을 내고 예산 지원도 늘렸지만 대형 산불 피해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산불 대책이 포장만 그럴듯했지 현장에선 별로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식으로는 앞으로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Q : 산불 진화대원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A : “전국에 산불 진화대원이 9600명 정도인데 고령화도 심하고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고령의 지역 주민들이 기간제 일자리 사업으로 참여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열심히 하는 대원이 있어도 내년이나 내후년에 계속 채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공공 일자리 사업은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선 산불 진화에 필요한 전문성이나 경험이 쌓일 틈이 없다. 군대에 비유하면 정규군을 동원해도 쉽지 않은 전투에 나이든 예비군을 투입하는 셈이다. 그나마 인원이 충분치 않으니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고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Q : 대안이 있겠나.
A : “있다. 각 지역의 의용 소방대원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인원도 약 10만 명이나 되고 조직도 전국 방방곡곡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의용 소방대는 법적 정년이 65세여서 고령화 문제도 덜하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 마을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나섰기 때문에 동기 부여도 확실하다. 119 소방 시스템은 1년 365일 24시간 가동돼 신속한 출동이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산불 지휘 체계 일원화 고려해야

Q : 의용 소방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A : “엄밀히 말하면 산불 진화대원은 산림청 소속으로 산불을 끄는 일을 하고, 의용 소방대원은 소방청 소속으로 주택 등 시설물 화재를 진압하는 일을 한다. 현장에서 보면 이런 식의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산불은 금세 바람을 타고 주변 마을로 번지기 때문이다. 일단 산불이 나면 빨리 불을 끄는 게 중요하지 소속 기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인명과 재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사례를 참고로 할 만하다.”
Q :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나.
A : “일본은 산불이 발생하면 소방청이 즉각 대응하는 것으로 지휘 체계를 일원화했다. 산불이 주변 마을로 빠르게 번져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신 산불 예방과 피해 복구는 한국의 산림청에 해당하는 임야청이 맡는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사람이 사는 마을과 산림 지역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국토 면적이 넓어 여러 기관으로 산불 대응 기능이 분산된 미국식보다는 일본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Q : 기후변화로 산불 위험이 커졌다는 시각도 있다.
A : “화재공학의 차원에서 엄밀하게 보면 기후변화는 당장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지구 전체로는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기온이 1.5도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사과 같은 주요 과일의 재배지가 북상하는 등 식물의 생장이 변한 건 사실이다. 다만 이 정도 변화로는 산불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하긴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 산림은 기후변화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땔감의 변화가 산불 위험 키웠다

Q : 그 문제가 무엇인가.
A : “세월이 갈수록 우리나라 산림에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층이 깊이 쌓이고 있다. 과거에 마른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환경이다. 나도 어릴 때는 시골에서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거의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 온 산이 불쏘시개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숲이 울창해질수록 산불 위험은 커진다고 봐야 한다.”
Q : 마른 나뭇가지가 그렇게 위험한가.
A : “죽은 나무가 바짝 마르면 물이 나무 안쪽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니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면 나무 표면의 수분이 금세 날아가 버린다. 불쏘시개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그러면 사소한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주변에 워낙 연료가 많기 때문에 불이 잘 꺼지지도 않는다. 현장을 모르면 의외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Q :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를 다른 수종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A : “소나무가 다른 수종에 비해 훨씬 위험하고 산불의 확산 속도도 빠른 게 사실이다. 소나무에선 휘발성 물질인 송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산림의 주종인 소나무를 갑자기 다른 나무로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돈도 엄청나게 들어갈 뿐 아니라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이번처럼 산불 피해 지역에 새로 나무를 심을 때는 불에 잘 견디는 나무를 먼저 심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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