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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노후의 매몰 비용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커플이 영화표를 3만원 주고 사서 보고 있는데 영화가 지독하게 재미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3만원이 아까워 계속 보자고 하고, B는 3만원은 어차피 지불한 비용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니 영화관에서 나와 밀린 일을 하자고 한다. 누가 합리적인 선택일까? B이다. A는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떨쳐 내지 못하고 미래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지불한 책값을 상관하지 말고 그 책 읽기를 중단하고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대부분은 지불한 돈이 아까워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큰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일은 발생한다.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이 낮아졌는데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 때문에 계속 그 프로젝트에 돈을 넣는다. 이처럼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매몰 비용(sunk cost)이라 하는데, 이는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연연하다 비합리적 선택
노후의 성공적 변화 위해서는
매몰 비용 ‘0’로 보는 태도 중요

일러스트=김지윤
선택에서 매몰 비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이다.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1934년 3월에 태어나서 2024년 3월에 나이 90세가 되자 세상을 떠났다. 저렇게 정확하게 90세를 살고 가는 게 좀 이상해 보인다. 실제로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카너먼 교수는 조력사를 통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카너먼은 평소 입버릇처럼 자신은 ‘매몰 비용이 제로(0)’라는 말을 했다. 매몰 비용이 제로이니 매몰 비용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과거가 아니라 미래 효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의 자발적 죽음도 매몰 비용이 제로인 자신의 철학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카너먼은 오롯이 90세 이후의 자기 삶의 모습을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했다. 아마 그 삶은 재미없는 영화라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카너먼은 부인이 인지증(치매)을 앓는 동안 그 힘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후 홀로 있을 자기 삶의 비효용을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더 보지 않고 영화관을 훌쩍 나선 듯하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선택을 함으로써 매몰 비용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개인의 생애에서 매몰 비용은 삶의 시간이 이어질수록 많아진다. 갓난아기는 매몰 비용이라 할 만한 게 없지만 60년의 삶을 이어 온 사람은 지금까지 지출하거나 투자해온 게 많다 보니 버리지 못할 것이 많아진다. 노후에는 복잡하게 쌓여 있는 것을 덜어내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짐만 정리가 필요한 게 아니다.

자녀에게 오랜 세월 많은 금전적·비금전적 지출을 해왔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물릴 수 없으니 매몰 비용이다. 이 비용을 제로로 해야 한다. 자녀에게 투자했기에 받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녀와 나의 미래의 관계에 가장 도움이 될 선택을 해야 한다. 부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직장에서의 업적과 사회에서의 위치도 매몰 비용이다. 여기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펼쳐지는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냈지만 70세에 인턴을 지원했다. 필자 주위에 은행의 임원을 하면서 퇴직 후를 대비해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딴 사람도 있고 좋은 직장의 공무원을 하고 나와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는 친구도 있다.

무엇보다 젊을 때 만들어 놓았던 자신의 세계나 관점이 노후에는 매몰 비용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젊을 때와 노후의 환경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생의 오전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매몰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과거를 무가치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소중한 자산을 만들었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만 과거에 해왔던 것들이 미래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노후의 선택에 영향을 덜 주게 해야 한다.

과거를 매몰 비용으로 떨쳐 내고 미래만 바라보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비용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적응 비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 닥치면 사람은 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라 그 비용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매몰 비용을 과소평가하고 적응 비용을 과대평가하면 삶은 비합리적 선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반대여야 한다.

노후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어떻게? 대부분은 변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이를 합리적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매몰 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제로(0)로 보는 한편 미래의 적응 비용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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