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도 못 끈 '좀비불씨' 잡았다…천왕봉 지켜낸 '7.5억 벤츠'

경남 산청·하동 산불 현장에 투입됐던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 박준호(44) 대원이 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20년차 산불 진화 베테랑인 박 대원은 “고성능 산불진화차 등을 통한 지상 진화가 없었다면 (산불이) 더 길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선 헬기를 통한 ‘공중전’ 만큼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활용한 ‘지상전’ 효과가 컸단 의미다.
산청·하동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과 산림청·지자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산불 현장에선 ‘산불 진화 주역은 헬기’라는 기존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최대 40대가 넘는 헬기를 투입한 날도 있었지만, 진화 작업은 ‘장기전’으로 갔다.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진 끝에 큰 불이 잡혔다. 213시간 여 만이다. 산청·하동 산불은 역대 두 번째 긴 산불(주불 진화 기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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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도 못 뚫은 ‘고어텍스 낙엽’…고성능 진화차가 잡았다
연무(煙霧)·운무(煙霧) 탓에 헬기 투입에 제약도 있었다. 연기와 안개가 많이 껴 일출과 동시에 헬기가 뜨지 못한 적도 있었다. 담수량이 5000L인 미군의 치누크 헬기가 올 것으로 기대됐던 지난달 27일에도 비구름이 낮게 깔리는 등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다음 날에야 투입됐다. 헬기가 주로 뜨는 낮에는 불씨가 연무와 빽빽한 숲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공중에서 화점(火點)에 정확히 물을 투하하기 어려웠단 말이다.

이때 박 대원 등 공중진화대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그리고 고성능 진화차가 불길을 잡았다. 불길이 눈에 잘 띄는 야간에 지리산 권역 곳곳에 숨은 ‘좀비 불씨’를 직접 찾아가 껐다. 고성능 진화차로 최대한 접근 가능한 산 속까지 진입, 진화대원들이 진화차와 연결된 호스를 짊어지고 어두운 산 속을 누볐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 아래 4.5㎞ 지점까지 화마(火魔)가 접근, 산림 당국의 애간장을 녹인 지리산국립공원 내부 불길도 마찬가지였다. 국립공원 내부 약 130㏊가 불탔지만, 천왕봉은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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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진화차, 대형산불 터진 경·남북 누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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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3대 추가 제작 중…매뉴얼 제작·교육도 진행”
산림청은 고성능 진화차 매뉴얼을 확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운용 교육에도 신경 쓰고 있다. 매뉴얼 제작 등을 담당한 박 대원은 “지난해 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교육했다”며 “우거진 산속에서 25㎜ 호스를 전개하고 회수하는 것부터 진화 전술까지 전달한 덕분에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서 처음 만난 대원들끼리도 손발을 맞출 수 있었다”고 했다.

안대훈.김민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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