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철인 대통령 이승만을 다시 생각한다

배재학당에서 공부한 20대 청년 언론인 이승만은 고종 폐위를 음모했다는 독립협회 사건에 연루되어 1899년 1월 한성 감옥에 투옥되었다. 자유를 빼앗기고 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타오르는 열정은 1904년 『독립정신』 집필로 표출되었다. 『독립정신』은 당시 조선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조선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며 조선 왕정 체제를 민주 공화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나중에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건국이념으로 이어졌다.
태평양전쟁 예견해 미국인들 감탄
한미방위조약으로 번영 기초 마련
공산주의 본질 꿰뚫는 혜안에 경의
그가 보여준 통찰력과 리더십 절실
한미방위조약으로 번영 기초 마련
공산주의 본질 꿰뚫는 혜안에 경의
그가 보여준 통찰력과 리더십 절실
이승만은 1904년 8월 석방되어 고종의 밀사로 미국에 갔다가 그곳에 남아 유학을 했다. 그러나 조선 독립을 꿈꾸는 그의 미국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지워싱턴대(학사), 하버드대(석사), 프린스턴대(박사)를 졸업했지만, 당시 미국 지식인 사회는 일본에 경도되어 일본에 적대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이 박사의 입지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워싱턴과 하와이를 오가는 그의 독립운동 여정은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과 대담함으로 가득했다.
이승만 박사의 탁월한 통찰력은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194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박사는 1882년 조선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방조한 것을 비판하는 한편, 일왕 숭배에 기반한 군국주의 정신과 당시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일본이 곧 미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이 박사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불과 반년 뒤 실제로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일본의 침략을 예언한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서평을 쓸 정도였다.
이승만 박사는 해방 후 미명(未明)의 조선 사회에 새롭고 올바른 정치체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 박사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반한 근대 국민국가 수립은 어려웠고 세워졌더라도 단명(短命)했을 것이다. 이 박사는 북한이 남침하자 미국의 힘을 빌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또한 미국의 대책 없는 휴전 계획에 맞서 반공포로 석방과 같은 뚝심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지난 70여 년에 걸쳐 북한의 남침 억제와 한국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
공산주의 확산을 앞장서서 막아낸 이 박사의 반공 노선은 구한말 조선에 간여(干與)하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반공사상으로 바뀌었다. 이 박사는 하와이에서 1923년 3월 『태평양잡지』에 ‘공산당의 당(當)부당(不當)’이란 논설을 썼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공화제 성립 이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분 계급제도가 혁파되고 노예 해방이 이루어져 인민의 평등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본주의 발달로 빈부격차가 생기고 경제적 노예 계층과 계급제도가 만들어졌다. 공산당이 이를 평등하게 하자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균등하게 나누자는 주장은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지 불과 6년 만에, 또한 1차 대전 후 많은 유럽 지식인이 이를 따르는 마당에,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반공사상을 확립한 이 박사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반공사상과 함께 평등사회 실현, 교육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건설 등을 국가이념으로 삼았다. 모두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대한민국의 바른 초석이다.
이승만 박사는 대다수 조선 백성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했던 가치 지향의 정치가였다. 그래서 그는 4·19 혁명 일주일 후 ‘부정을 보고도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것’이라며 깨끗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다행히도 2012년 10월 이승만 박사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은 그를 위해 강의실 하나를 재단장하여 이승만 홀(Syngman Rhee Lecture Hall)로 명명했다. 그리고 해마다 ‘이승만 박사 추모 강연’을 개최하기로 했다.
세계는 바야흐로 미·중·EU·러 등 여러 강대국이 대립하는 다극체제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철인 대통령(philosopher president) 이승만이 보여준 통찰력과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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