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저주받으리라, 법률가들이여"

진영·성별·세대와 무관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과 탄핵 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그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형사재판 과정을 지켜본 국민 대다수가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조 카르텔이 작동하는 전관예우의 위력,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사법과 권력의 이런 부정적 상호작용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한국은 지금 법기술자들 끼리끼리 소소한 부와 특권을 나눠 먹는 정도가 아니라, 법을 앞세워 보통 사람의 상식을 우롱하는 지경까지 왔다.
헌재 탄핵심판 정파성으로 갈등
이재명 재판도 정치적 이해 시비
법이 상식 우롱하면 조롱 당할 뿐
이재명 재판도 정치적 이해 시비
법이 상식 우롱하면 조롱 당할 뿐
양쪽 다 헛심 쓴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위력은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무리하게 탄핵했던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으로 정확히 갈린 결과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법 모르는 대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런 궁금증을 품을 수밖에 없다. 판사에 따라 죄의 유무가 갈린다면 대체 법은 무슨 소용인가. 유감스럽지만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지난 2018년 법조 종사자(판·검사, 변호사 등)를 대상으로 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절반이 전관예우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까지 바꾼다고 답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통해 온 국민이 이를 목격한 마당에 법의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이 기대하는 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졌다는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재판부의 무죄 판결 사유가 더 기가 막히다. 이 대표가 선거 과정에서 "국토부 협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고 발언한 건 거짓이라는 검찰 기소에 대해 재판부는 "상당한 압박감을 과장한 표현일 뿐 허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무죄의 근거로 어떤 그럴듯한 법 조항이나 판례가 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 모르는 대중 눈높이에선 궤변으로 보일 뿐이다. 현재 의회 권력을 움켜줬고 또 미래 권력까지 거의 손에 쥔 유력 정치인이 아닌 일반 형사재판 피고인이었다면 과연 재판부가 이렇게까지 속내를 헤아려 판결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법이 상식에 한참 못 미친다면 대체 법의 쓸모는 무엇인가.
일찍이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 예일대 교수는 32살에 쓴『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1939)에서 법률가들을 일컬어 "특수한 법 지식으로 무장하고 난해한 말장난을 첨가해 대중에 군림하는 고급 사기꾼"이라며 "재판은 법적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비판이다.
법이 상식을 우롱하면 로델이 그랬듯 국민도 법을 조롱한다. 4일 탄핵심판이 상식으로 충분한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길 기대한다.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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