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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시각각]"저주받으리라, 법률가들이여"

헌재가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4일로 발표했다. 각각 파면과 각하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와 국힘의힘 관계자가 지난달 28일 헌재 앞에서 1인시위 하는 모습. 최기웅 기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진영·성별·세대와 무관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과 탄핵 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그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형사재판 과정을 지켜본 국민 대다수가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조 카르텔이 작동하는 전관예우의 위력,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사법과 권력의 이런 부정적 상호작용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한국은 지금 법기술자들 끼리끼리 소소한 부와 특권을 나눠 먹는 정도가 아니라, 법을 앞세워 보통 사람의 상식을 우롱하는 지경까지 왔다.

헌재 탄핵심판 정파성으로 갈등
이재명 재판도 정치적 이해 시비
법이 상식 우롱하면 조롱 당할 뿐
과장이 아니다. 우선 헌재. 헌재가 어제(1일)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기일을 4일로 발표했다. 작금의 헌재 재판관 8인 체제가 어떻고, 왜 9인 완전체가 돼야 하며, 혹은 2인 퇴임 후 6인만 남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등등. 지금껏 여야는 친민주당 성향으로 알려진 마은혁 헌재 재판관 임명을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때까지 막거나 강행하기 위해 서로 위헌이네 뭐네, 절차적 정당성이 어떠하네를 다투는 시끄러운 법적 공방을 벌였다. 온갖 복잡한 법 지식과 용어가 난무하며 대중을 헷갈리게 했지만, 결국 이런 거다. 입맛에 맞는 재판관 넣고 빼기로 재판 결과를 내 편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떼쓰기,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예 재판 결과를 바꿔버리겠다는 힘겨루기다.

양쪽 다 헛심 쓴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위력은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무리하게 탄핵했던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으로 정확히 갈린 결과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법 모르는 대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런 궁금증을 품을 수밖에 없다. 판사에 따라 죄의 유무가 갈린다면 대체 법은 무슨 소용인가. 유감스럽지만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지난 2018년 법조 종사자(판·검사, 변호사 등)를 대상으로 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절반이 전관예우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까지 바꾼다고 답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통해 온 국민이 이를 목격한 마당에 법의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1심에선 징역 1년의 중형이었다. 뉴시스
지난달 서울고법의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역시 마찬가지다. 1심에선 이 대표가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이 나왔다. 그런데 재판부가 판단을 180도 바꿔야 할 정도의 새로운 사실 하나 없이 그저 판사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2심에선 무죄가 나왔다.

대중이 기대하는 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졌다는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재판부의 무죄 판결 사유가 더 기가 막히다. 이 대표가 선거 과정에서 "국토부 협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고 발언한 건 거짓이라는 검찰 기소에 대해 재판부는 "상당한 압박감을 과장한 표현일 뿐 허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무죄의 근거로 어떤 그럴듯한 법 조항이나 판례가 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 모르는 대중 눈높이에선 궤변으로 보일 뿐이다. 현재 의회 권력을 움켜줬고 또 미래 권력까지 거의 손에 쥔 유력 정치인이 아닌 일반 형사재판 피고인이었다면 과연 재판부가 이렇게까지 속내를 헤아려 판결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법이 상식에 한참 못 미친다면 대체 법의 쓸모는 무엇인가.

일찍이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 예일대 교수는 32살에 쓴『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1939)에서 법률가들을 일컬어 "특수한 법 지식으로 무장하고 난해한 말장난을 첨가해 대중에 군림하는 고급 사기꾼"이라며 "재판은 법적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비판이다.

법이 상식을 우롱하면 로델이 그랬듯 국민도 법을 조롱한다. 4일 탄핵심판이 상식으로 충분한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길 기대한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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