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1경원 눈앞인데 땜질 연금개혁…자식들 좀 생각하자" [강찬호의 뉴스메이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 - 전 여당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이 본 연금개혁안 문제점

정부가 보험료율(내는 돈)을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3%로 각각 올리는 골자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1일 국무회의에서 공포했다. 이 장면을 누구보다 착잡하게 지켜본 이가 있다. 지난달 21일 국민의힘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에서 사퇴한 박수영 의원(재선, 부산 남구)이다. 그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짭짤한 보직을 스스로 그만둔 박 의원을 그의 국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득대체율 3%p나 올려 연금 고갈 불 보듯
지도부, 특위 의견 무시하고 야당과 ‘밀실합의’
청년들 불안감 엄청나, 지금이라도 수정 마땅
민주당, 민노총 구성원 대신 국민 생각해야”
지도부, 특위 의견 무시하고 야당과 ‘밀실합의’
청년들 불안감 엄청나, 지금이라도 수정 마땅
민주당, 민노총 구성원 대신 국민 생각해야”
지도부 “억울하면 네가 대표해”
Q : 사퇴라는 극약처방을 할 만큼 절박했나요.
A : “특위 위원들을 매주 모아 학자들 초청해 3시간씩 12번에 걸쳐 36시간을 공부했어요. 국회에서 국민연금을 가장 잘 아는 조직이 됐고,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 지도부에 보고했는데 깡그리 무시하고 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주장 판박이나 다름없는 안에 합의해준 거예요. 피가 거꾸로 솟는 심경에서 사표를 던졌습니다.”
Q :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입니까.
A : “이건 ‘청년세대 착취법’입니다. 소득대체율을 현행 40%로 고정해도 연금 고갈을 못 피하는데 이걸 43%로 올린 데다 자동조정장치마저 뺐으니 재정 파탄이 불 보듯 합니다. 민주당에 ‘여야가 특위를 만들어 한두 달이라도 공부한 뒤 결론을 내자’고 촉구했는데 그들은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는 말만 반복했어요. 그런 안을 발의한 의원이 3명이나 돼요.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45%를 주장했어요. 민노총 주장과 똑같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갖은 고생 끝에 40%로 내린 소득대체율을 민주당이 올리는 데 앞장섰으니 노 대통령이 하늘에서 뭐라고 할까요. 여론이 좋지 않으니 민주당이 결국은 43%로 내렸지만, 그밖엔 민노총 주장을 죄다 받아줬어요. 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세금으로 메꾸라는 요구를 받아준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메꿔주면 연금 개혁을 할 이유가 없어져요. 연금공단은 보험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점에서 사회주의나 다름없는 조직이 돼 버리는 거죠. 이러면 정부 재정이 엄청나게 들어갈 겁니다.”
Q : 어느 정도인가요.
A : “장기적으로는 ‘경’ 단위가 될 거라고 해요. 당장 지금 적자만 3000조원에 달합니다. 국민 한명 한명이 연금을 받다 어느 나이에 숨진다고 가정하면, 그때까지 받을 돈의 총액(충당 부채)이 그 정도 돼요. 이걸 정부가 어떻게 감당하겠냐고 5번 넘게 지도부에 보고했고, 의총에서 15분 특강까지 했어요.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여요. 그러니까 표결에서 그 많은 의원이 반대나 기권표를 던진 거예요.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항인데 여야를 떠나 84명이 반대나 기권한 건 초유의 일입니다.”

Q : 지도부 반응은 어땠나요.
A : “지난달 21일이었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자동조정장치 수용 거부’를 선언했기에 합의가 될 리 없다고 여겼는데 오후 2시에 열기로 한 본회의가 돌연 2시간 연기되더군요. 이 사이에 양당 지도부가 몰래 만나 전격 합의한 거죠. 국회의장도, 양당 원내대표도 광을 내고 싶었는지 밀실 합의를 한 거예요. 지도부에 항의하니 ‘당신이 3선 의원 돼 원내대표 되면 바꿔라’고 하는 거예요. 기가 막혔죠.”
Q :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A : “양당이 합의했으니 거부권 행사는 반대합니다. 내년 1월 1일 발효까지 남은 9개월 동안 변화를 끌어내려고 조만간 출범할 국회 연금특위에 3040 의원들을 투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여당 특위 위원 6명 중 절반인 3명이 김재섭·이용태·우재준 등 개혁안에 반대한 30대 의원들이죠. 반면 민주당은 특위 위원 7명 중 30대 의원이 1명뿐인 데다 기권한 의원 1명 빼면 6명 모두 찬성한 이들이에요. 이걸 보면 민주당은 위원회 시늉만 하다가 접으려 할 겁니다. 21대 국회 때도 연금특위 19개월 끌다가 빈손으로 끝냈거든요.”
청년들 “여당 믿었는데 지지 철회”
Q : 민주당이 왜 청년을 위한 연금개혁에 소극적일까요.
A : “청년들은 ‘아버지가 아들 지갑 뜯어가는 악법’이라고 난리에요. 힘들게 번 돈 연금으로 냈다가 나중에 못 받을 거란 불안감이 엄청나요. ‘국민연금 청년 행동’이란 청년 단체가 있는데, 국회에서 내 주선으로 4번이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현행 연금체계의 문제점을 똑 부러지게 짚더군요. 그런데도 여야 지도부가 개혁안을 전격 통과시키니까 이 똑똑한 청년들이 ‘여당에 실낱같은 기대를 했는데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해 안타까웠죠.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은 2056년 바닥납니다. 개정해도 8년 더 연명할 뿐이에요. 지금 20~24세 청년들은 지급연령인 65세가 돼도 못 받는다는 얘기죠. 국민연금은 장기간 고액 봉급 받은 이들이 절대 유리해요. 민노총 구성원들은 공공기관·대기업 소속이라 월급이 많고 가입 기간도 길지만,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들은 보수가 낮고 이직도 심하니 받게 될 연금은 훨씬 적어요. 그런데 민주당의 주 고객은 2030 세대가 아니라, 민노총이니 그들에 유리한 연금 개혁안을 미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크게 기여한 게 민노총 아닙니까? 그러니 그들 주장하는 대로 들어주는 거라고 봅니다. 일례로, 내는 사람은 매년 0.5%포인트씩 8년간 올려 내게 되는데 받는 사람은 내년부터 바로 43%를 받는단 말이에요.”

Q : 타개책은 뭘까요.
A : “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우선이에요. 민주당은 은퇴자들이 국민연금에서 기존소득의 절반을 받으면 생활이 된다면서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는 입장입니다. 그러려면 정부 지출이나 직장인들의 부담이 엄청나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신 국민연금에선 기존소득의 40%만 충당하고 퇴직·개인연금에서 각각 10%씩 충당해 직장 다닐 때 소득의 60%를 은퇴 이후 지급받는 방안을 추진해야 합니다.”
Q :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활용방안을 설명해주신다면.
A : “퇴직연금은 고용주가 부담하는데, 직장인이 퇴직할 때 목돈으로 받는 방식이라 체불되기 일쑤였어요. 따라서 퇴직연금도 직장인 재직 시 매달 은행에 적립하게 유도하고, 퇴직 후 연금 형태로 받아가도록 법제화해야 합니다. 고용주에게 세금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면 실현이 가능해요. 개인연금도 세금 혜택으로 가입을 유도하면 수익이 나오니 선순환이 가능합니다. 금융위원회와 논의했는데, 긍정적이에요. 여기다 기초연금까지 총 4개의 ‘우산’을 만들면 정부 부담은 적어지고 국민의 은퇴 후 연금은 늘어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Q : 기초연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 “소득 하위 70%에 기초연금을 똑같이 줄 필요가 없어요. 정말 힘든 분들은 소득 하위 25% 밑의 ‘상대적 빈곤층’이죠. 고령층이 많고 극단적 선택 비율도 높아요. 이들에게 더 많이 주는 역진적 구조로 기초연금을 개선해야 하는데 표 떨어질까 봐 건드리지 않고 있어요. 이러면 그 부담이 죄다 다음 세대에 지워집니다.”
‘친구야, 단식 그만해’, 최상목의 만류
박 의원은 지난달 2~6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면서 단식 농성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단식까지 할 만큼 절박한 문제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 후보는 여야 합의 몫인데 야당이 일방적으로 뽑은 인사이니 절대 임명돼선 안 된다고 봤어요. 한데 야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당시)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하길래 당초엔 여당 의원 전원이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하기로 했어요. 내가 첫 번째로 나서겠다고 했는데 언론이 ‘하루 단식은 웰빙 다이어트’라고 비판하니까 의원들이 ‘욕먹을 바에 하지 말자’고 접더군요. 그런데 지난달 1일 ‘최 대행이 4일 국무회의에서 마 후보를 지명할 것’이란 소문이 돌길래 2일 아침부터 홀로 단식에 돌입했죠. 최 대행은 서울대 법대 82학번과 행시 29회 동기로 43년 지기란 점이 의무감으로 작용했어요. 사흘 연속 단식을 이어갔더니 최 대행이 4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마 후보 임명을 보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튿날엔 최 대행이 내게 사람을 보내 ‘수영아, 마 후보 임명 안 할 테니 단식 끊어라’고 호소하더군요. 또 존경하는 중학교 은사가 ‘살아서 싸워야지’란 문자도 보내주셨길래 ‘이만하면 뜻을 이뤘다’고 판단해 나흘 만에 단식을 중단했죠.”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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