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시선] 우물 안 정치, 내수용 정책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열린 해외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이복현 금감원장은 연신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한국 증시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투자를 독려하고자 나선 자리였다. 그런데 현지 투자자들의 관심은 1년째 이어지는 ‘공매도 금지 조치’에 쏠렸다. 선진 증시로 발돋움하겠다면서 어떻게 ‘글로벌 스탠다드’도 따르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그럴 것이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를 금지한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 단 두 곳뿐이었다. ‘밸류업’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앞에서 공매도 금지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던 이 원장도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해외서 웃음거리 된 공매도 금지
세상 바뀌는데 규제는 제자리
정책도 글로벌 경쟁력 챙겨야
세상 바뀌는데 규제는 제자리
정책도 글로벌 경쟁력 챙겨야
공매도 금지는 결국 시행 1년 반만인 지난달 31일 풀렸다.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갚아 차익을 얻는 공매도는 국내외 기관 투자자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쓰는 보편적 투자기법이다.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순기능도 있다. 이상 급등하거나 거품이 낀 주식을 찾아내 빠르게 적정 가격을 찾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주가를 떨어뜨리니 개인 투자자들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특히 당시 급등세를 타던 2차전지 주가가 공매도에 번번이 브레이크가 걸리자 원성은 더 커졌다. 국회 청원이 올라갔고 급기야 총선을 앞둔 여당도 동조하고 나섰다. 전격적인 금지 조치 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는 명분을 댔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자는 얘기였다.
실제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남긴 결과가 그랬다. 2차전지 주가는 대부분 당시의 반 토막이다. 시장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다. 공매도 금지 기간 코스피는 8%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30% 가까이 상승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등 주요국 증시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외국인이 슬금슬금 빠져나가면서 이들이 보유한 시가총액 비중은 뚝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 투자자 비중이 과도한 시장인데, 그나마 큰 손들이 빠져나가며 토양은 더 척박해졌다. ‘개미 지옥’이 ‘개미 천국’이 되긴커녕 이제는 개미들 마저 짐을 싸 미국 증시로 옮겨간다.
그 사이 우리 증시의 체질을 바꿔 줄 ‘선진시장 지수’편입은 더욱 멀어졌다. 선진시장은 현재 우리가 속한 신흥시장에 비해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장기 투자자금이 움직이는 곳이다. 하지만 키를 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해 6월 한국을 신흥국 시장에 그대로 남겼다. 그러면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공매도 금지 조치로 시장 접근성이 제한됐다”고 콕 집었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린 반응은 더욱 냉소적이었다. 우리 경제 규모나 인프라를 들어 설득이라도 하려 치면 “국내 정치 이슈로 증시 제도를 흔드는 나라가 어떻게 선진시장에 들어갈 수 있냐”는 핀잔만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숙명을 안고 있다. 높은 대외 의존도와 개방성은 양날의 칼이다. 치명적 약점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 개방성이 오늘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수출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당장 표에 눈이 어두워 밖을 보지 못하는 ‘우물 안 정치’,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진 ‘내수용 정책’은 오히려 갈수록 기승이다.
비단 공매도만이 아니다. 각종 규제와 세제를 글로벌 기준에 맞춰 손보는 일은 도무지 진척될 기미가 없다. 국가의 명운을 건 반도체 패권전쟁이 한창이지만 반도체 연구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은 결국 무산됐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경쟁국은 갖가지 특례와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뛰라고 독려하는데, 우리 정치권의 노동시장 인식은 여전히 1960년대 전태일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한탄한다.
그 사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하나, 둘 첨단 제조시설을 미국 등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관세 폭탄을 흔들어대니 기업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온통 국내 문제에 정신이 팔린 채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떤 대비가 돼 있는지 제대로 챙겨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4일로 예정되면서 계엄과 탄핵 사태도 마무리 국면을 향한다. 이제는 정말 밖도 좀 쳐다볼 때가 됐다.
조민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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