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고요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이런 조카와 같이 보고 싶은 작품이 애니메이션 ‘플로우’(사진)다. 라트비아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만든 이 애니의 주인공은 작은 고양이. 갑자기 닥친 홍수로 위기에 처한 고양이는 정처 없이 떠다니던 배에 올라타고, 같은 배에 탄 카피바라·여우원숭이·골든리트리버·뱀잡이수리와 함께 난관을 헤쳐간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엔 대사가 없다. 장대하게 펼쳐진 자연 풍광 위로 각 동물의 울음소리만 계속된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지만 점차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인간의 언어로 번역돼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골든리트리버의 “왕왕”은 “어이, 괜찮아?”로, 고양이의 “냐옹”은 “와, 살아있었구나”, 여우원숭이의 “꽉꽉”은 “너 뭐야, 짜증 나”라는 식.
왜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인간들은 다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모든 걸 관객의 상상에 맡긴 채,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시끄러운 세상 속, 낯선 존재에 감정 이입해 울고 웃는 드문 경험. 올해 아카데미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 개봉 13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1만명을 돌파하며 예상외의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이영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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