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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 잔해 사이로 손뻗은 아이…거리는 화장터가 됐다 [미얀마 강진 현장 가다②]

차갑게 식은 육신은 천으로 덮여 있었고, 그 밑으로 앙상하게 삐져나온 발들만 보였다. 주변은 망연자실한 눈빛, 통곡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31일 오후(현지시간) 공동 화장터로 쓰이는 미얀마 만달레이의 쨔르니깐 사원에선 몰려드는 시신 처리에 바빴다. 사흘 전 일대를 격렬히 뒤흔든 규모 7.7 강진의 여파였다.

31일 오후(현지시간) 미얀마 만달레이의 쨔르니깐 사원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이곳 화장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화장터에서 시신 접수를 중단하자, 길거리에 임시 화장터를 만들어 태워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화장터에서 만난 한 주민은 “어제만 수백 구의 시신을 화장했다”며 “아침부터 시신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어서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옆에선 영정을 든 한 여인이 가족으로 보이는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듯 뜻 모를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미얀마 불교 성지 중 한 곳인 만달레이에는 승려들이 많다. 도로에선 이번 지진으로 희생된 승려들의 시신을 태운 운구차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무너진 승려들의 경전 시험장 건물에선 전날에 이어 매몰된 실종자를 찾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매몰돼 ‘살려달라’ 손 뻗은 어린이

재앙은 무차별적이다. 만달레이 도심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짜욱세의 브라이트 키즈 유치원(2층 건물)도 지진을 피하지 못했다. 70여명의 원아가 있었는데 얼마나 많이 희생됐는지 아직 파악을 못한 상태다. 유치원이 있던 자리엔 주인을 잃어버린 가방과 도시락, 장난감들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인근 주민인 더 킨 싼은 “우리 마을에서 여기가 제일 피해가 심하다. 아직 시신 수습도 못했다”고 말했다.

31일(현지시간) 지진으로 붕괴된 미얀마 짜욱세의 브라이트 키즈 유치원 잔해 위에 주인을 잃은 가방들이 흙먼지 속에 남아 있다. 위문희 기자
현지인 사이에선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매몰된 한 어린이가 어른들의 구조를 기다리며 손을 뻗는 사진이 한국 교민들의 인터넷 카페 게시물로 올라왔다. 이것을 본 양곤 거주 교민 김형원씨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며 그 길로 생수와 항생제 등 긴급 의약품을 차에 싣고 피해 지역으로 향했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에 두 딸이 있는데, 부모 마음은 다 같다”며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과 한국어학교 학생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돈으로 물품들을 마련했다”고 했다.

현지 대사관도 긴급 구호에 나선 상황이다. 주미얀마 대사관의 이진형 영사는 “가장 피해가 심한 만달레이 지역에 영사를 급파해 라면과 생수 등 생필품을 적극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만달레이의 낮 풍경은 전날 밤 늦게 도착했을 때보다 더 무거웠다. 여진이 이어지면서 긴장과 공포가 반복됐다.

미얀마 강진 피해 지역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매몰된 어린이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 미얀마 현지 소셜미디어 캡처
주민들은 이날도 40도에 달하는 찜통더위 속에서 지진 수습에 분주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사정부의 요청으로 출발했다던 국제구호대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았다. 다만 중국 국영 신화사는 “자국 구조대가 피해 지역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고 이날 전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인근 공항이 폐쇄된 상태여서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육로 역시 곳곳이 지진으로 파손된 상태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품 전달도 그만큼 어려웠다.



72시간 ‘골든 타임’ 훌쩍 넘겨

문제는 이미 재난 구조의 ‘골든 타임’인 72시간을 훌쩍 넘겼다는 점이다. 매몰된 실종자들의 생존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는 의미다.

만달레이의 11층 규모 아파트(스카이빌라) 붕괴 현장에서도 구조대가 55시간 만에 35세 임부를 구조해냈지만 결국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다. 구조가 지체될수록 이런 사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애타게 실종 가족을 기다리던 윈민트(65)는 “딸 내외와 6살 손주가 아파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구조대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31일(현지시간) 심각한 지진 피해를 입은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인부가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그럼에도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맨손’ 사투를 계속 벌이고 있었다. 구조 활동을 돕던 한 주민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매몰자들을 찾고 있다”며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고 등급(3급)의 비상사태’로 선포할 만큼 피해지의 모든 상황은 열악하다. 주민들은 마땅한 대피소 없이 모기장이 달린 돗자리형 텐트 등에서 지내고 있다. 전날 밤에 가본 만달레이 왕궁 인근 도로는 차량과 텐트가 꽉 들어차 캠핑장을 방불케 했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았다. 가장 큰 곤란은 단전이었다. 해가 저물면 인구 120만 명의 대도시가 어둠에 갇힌 듯 깜깜해졌다. 교민들은 “무너진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면 화재가 날 우려가 있어 정부가 단전 조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가 없어 우물물(생활용수)을 길어 올리기 위해 오토바이 모터를 쓴 웃지 못할 사례가 회자될 정도였다.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중앙일보 취재진이 미얀마 만달레이에 진입했다. 지진으로 전기가 끊겨 도시가 어둠에 잠긴 가운데 차량 전조등에 드러난 피해 모습. 이도성 특파원
WHO도 성명을 통해 “전기와 식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질병 발병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며 30일간 긴급 의료 지원을 위한 800만 달러(약 117억원)의 자금 지원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진앙인 사가잉 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하는 곳이어서 안전 문제로 구조대가 섣불리 접근할 수 없어서다. 만달레이와 사가잉 사이 이라와디 강을 가로지르는 아바 대교가 교각만 남긴 채 무너지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문희.이도성.조수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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