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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으론 살던 집 못 지어"…산불이 지방소멸 부채질하나

'산청ㆍ하동 산불 주불 진화'가 완료된 다음 날인 31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의 산불 피해 현장. 불길에 고무 대야가 녹고, 집 철제 구조물과 슬라브 지붕이 내려 앉았다. 안대훈 기자


“군 생활 빼고 80년 가까이 산 곳인데…”

31일 오전 8시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전날 산림 당국이 ‘산청·하동 산불 주불 진화 완료’를 선언했지만,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이 머무는 임시 거주 시설이다. 산청 산불로 대피한 332명 중 피해가 컸던 중태·외공·자양마을 주민 24명은 여전히 피난 생활 중이다. 화마(火魔)에 거주지를 잃어서다. 상당수 60·70대 고령자다.

중태마을 주민 정모(82)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철골 구조에 슬래브 지붕을 얹은 67㎡(20.3평) 면적의 단층 주택인 정씨 집은 불길에 철골은 휘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그는 “50년대엔 초가집, 새마을운동 하던 60년대엔 슬레이트집, 90년대엔 함석집, 2013년엔 20평 슬래브 집으로 바꿨지만, 집터는 그대로였다”면서 “32개월 군 생활 빼곤 평생 살았던 곳”이라며 착잡해 했다. 이어 “불탄 것을 빨리 군에서 치워줘야 거기에 텐트이든 컨테이너이든 설치하고, 논·밭에서 고사리가 나면 그걸로라도 먹고살지”라고 했다.

지난 2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안 마을 일대가 산불 피해로 인해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노물리 해안 마을은 지난 22일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25일 강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뉴스1


큰 불 껐지만…여전히 피난 중

영남권을 강타한 산불의 주불은 잡혔지만, 아직 귀가하지 못한 이재민은 많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지금도 전국 대피소에 머무는 인원이 3171명이다. 경북이 3112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정씨와 같은 고령자다. 주택 3717동(전소 3514동·반소 110동·부분소 93동)이 화마를 당해서다. 지난달 21일부터 경남 산청·하동과 경북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울산 울주 등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 과정에서 대피한 인원은 약 4만명에 가깝다.

이에 정부·지자체는 우선 임시 조립주택을 지어 공급하겠단 계획이다. 집을 새로 짓는 비용 등도 지원한다. 현행법상 피해 주택 상태가 개축하거나 수리하지 않으면 다시 살 수 없는 ‘전파’ 또는 ‘반파’의 경우, 주택 규모에 따라 가구당 2000만~3600만원(전파), 1000만~1800만원(반파)을 지원한다. 재해복구자금도 1.5% 이자로 최대 1억36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한다. 전파 기준, 이재민은 1억5000여만원~1억7000여만원을 융통할 수 있단 얘기다.

31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권정생동화나라에 산불 피해 이재민을 위한 모듈러 주택 설치가 한창이다. 뉴스1


“정부 지원 부족해…원래 집 짓는데 10억인데”

하지만 곧장 예전과 같은 집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다. 정부 지원만으론 부족해서다. 산불 발생 2년 가까이 지난 강원 강릉시 산불(2023년 4월 11일 발생) 이재민 중 아직도 임시 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많다. 당시 주택만 204동(전파 187동·반파 17동)이 불탔는데, 조립주택을 신청한 이재민은 모두 147가구나 됐다. 불이 난 강릉 안현동·저동 곳곳에 임시 조립주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원래 191㎡(58평) 2층 규모의 전원주택에서 살던 최모(45·여)씨는 현재 23.1㎡(7평) 크기의 임시 조립주택 2동에서 거주 중이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는 최씨는 “기존 대출이 있는 데다 건축비가 올라 보상금으로 집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원래 집(58평 규모)을 지으려면 10억이 든다. 언제까지 조립주택에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최양훈 강릉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재난지원금·성금으로 다시 집 짓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포기한 분들이 꽤 있다”며 “이번 산불에 정부·지자체가 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2023년 4월 강원 강릉시 산불 당시, 집이 전소된 피해 주민의 가족 모습. 중앙포토


“집 짓기 포기↑…지방소멸 가속화 우려”

이재민이 주택 복구를 포기하면 지방소멸이 가속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재민 중 고령자가 많다 보니 보상금을 받더라도 집을 짓거나 수리하지 않고 자손에게 물려줄 가능성도 있어서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상당수 이재민이 임시 주택에서 살다가 떠나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북도가 정부에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이유다.

이 지사는 지난 30일 ‘산불 피해 후속 조치 브리핑’에서 “피해 주민들이 많지 않은 지원금으로 집을 짓는 데 망설이고 있다”며 “2022년 울진 산불 피해 당시에도 80세 이상 주민들은 집을 안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어 “불탄 집은 집으로 보상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안대훈.김정석.박진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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