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랑해"…70대 헬기 기장은 추락 전날 아내에게 속삭였다

“사고 전날 통화에서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28일 낮 12시쯤 경기 김포시의 한 장례식장. 경북 의성 산불 진화 중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희생된 고(故) 박현우(73) 기장의 아내 장광자(71)씨는 남편을 떠올리다 말문이 막혔다. 장씨는 사고 전날인 지난 25일 오후 7시30분쯤 박 기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근무해 떨어져 살았던 남편은 매일 같은 시간마다 “저녁 먹었냐”며 안부를 물었는데, 그날따라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전화를 받은 남편이 ‘의성에 진화 작업 지원을 나와서 전화를 못 했다’고 했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하곤 눈시울을 붉혔다.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한 박 기장은 육군항공대에서 비행을 시작했다. 1988년 전역 뒤 민간 항공사에 취업해 40년 넘게 비행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생전 산불 등 방재 작업부터 석유·가스 시추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출동이 잦은 봄·가을철이면 타지에 머물러야 했지만, 가족들에겐 아내의 생일을 살뜰하게 챙기고 시간을 쪼개 가족을 돌보던 다정한 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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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우리의 영웅"
이날 박 기장의 손자와 손녀는 그의 영전에 손수 적은 편지를 바쳤다. 미국에 사는 박 기장의 손자 최루빈(11)군은 “제 할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고마워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지만, 천국에서 저를 항상 지켜보실 거라고 믿어요. 사랑해요 할아버지”라고 영어로 적었다. 손녀 박소율(8)양은 “할아버지는 우리의 영웅이에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사랑해요”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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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자 예우…이천 호국원에 안치
박 기장은 26일 오후 12시54분쯤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헬기로 산불 진화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사고 목격자들은 박 기장이 추락 직전 민가로 향하던 헬기를 야산 방향으로 틀었다고 증언했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헬기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박 기장은 공무 수행 중 사망한 순직자로 예우돼 이천 호국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영근.박종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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