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까리 유물’ 다 모였네…187m 터널에 들어선 별난 수장고

버리기엔 찜찜하고 모셔놓기도 애매한 ‘아리까리 유물’들을 한데 모아두는 국립 수장고가 있다. 지난 24일 경남 함안군에서 옛 모곡터널을 개조해 문을 연 ‘영남권역 예담고’다. 예담고란 ‘옛 것에 현재를 담는 공간’이라는 뜻.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한국문화유산협회와 손잡고 운영하는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이다. 앞서 충청권역 예담고가 대전에 열었고, 호남권역은 전주에, 해양권역은 목포에 열었다. 영남권역 예담고가 네 번째다.


기본적으로 유물 수장고의 기능을 해야하기 때문에 엄격한 방범 기능은 물론 내부 온도를 15~17도로 서늘하게 유지한다. 전시실, 교육실, 기계실, 유물정리실 등도 있다. 타 권역 사례들이 수장 기능에만 충실했던 반면 영남권역 예담고는 ‘보이는 수장고’를 도입해 일반 관람객을 위한 교육·활용 프로그램까지 도입한 게 돋보인다.
“붓으로 이렇게 흙을 살짝살짝 털어내니까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죠. 이걸 확 꺼내도 될까요? 아니죠~. 네, 우리 친구가 좀 더 유물 밑의 흙을 걷어내 볼까요? 네, 이제 장갑을 끼고…”
24일 이곳을 찾았을 때 수장고 한쪽에선 함안 문암초 학생들이 학예연구사의 지도에 따라 ‘유물 발굴’ 모의 체험 중이었다. 학예사의 시범을 따라서 직접 붓질을 따라해 보면서 문화유산을 조심조심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후 유물카드에 그림과 함께 특징을 적어넣는 실습도 이뤄졌다. 사전 신청만 하면 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무료다.

예담고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문화유산협회 소속 이아영 학예연구사는 “영남권역 예담고의 경우 함안박물관, 경남문화재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원 등에서 발굴 조사한 성과와 현황을 전시로 알리면서 지역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학술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부 유물은 개방형 수납함 안에서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이날 학생들의 체험 프로그램도 모조품이 아니라 실제 발굴 유물을 활용했다.
예담고 사업은 기존 발굴기관 및 박물관들의 수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2021년 본격 추진됐다. 폐교·폐터널 등 유휴시설을 활용해 지역에 새로운 문화거점을 마련한다는 발상이 호응을 얻었다. 각 시설의 리모델링 비용은 30억원~70억원 등 천차만별이다. 2027년엔 경기도 시흥에 수도권역 예담고가, 2028년엔 영월에 강원권역 예담고가 개설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총 21만7480점의 비귀속 유산(발굴 후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보관하던 유물)이 권역별 예담고로 이관됐다.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국의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지금은 무심하게 보이는 유물일지라도 나중에 가치가 재발견될 수 있고, AI(인공지능) 발달로 인해 새로운 유물 분류·분석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면서 “미래세대를 위해 역사 자산을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예담고가 더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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