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 폭싹 속았수다

손헌수
집에 가서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하자, 남편없이 혼자 호텔에서 매일 청소를 하셨던 어머니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상담을 하시더니 다음날 학교로 찾아가셨다. 선생님은 촌지를 기대했던 것인데, 어머니가 알아듣지 못하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봉투를 들고 학교에 다녀가신 후에, 선생님은 ‘회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나를 임명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반장보다 회장이 더 높은 자리란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찾아 가셨고 2학기때 나는 회장보다 낮은 ‘반장’이 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반장투표를 했다. 학생들이 모두 청소를 하는 동안 선생님은 혼자서 개표를 마친다. 그리고 결과를 칠판에 적으셨다. 박미애 24표, 손헌수 12표, 이승진 10표, 기타등등… 박미애라는 여자아이가 반장이 된다. 미애는 부모님이 두분 모두 선생님들이었다. 특히 미애의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가르쳤던 선생님의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여학생에게 투표에서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투표용지에 내 이름을 적었단다. 나도 내 이름을 적어냈으니 어림잡아 계산해도 내 표가 20표는 넘을 것같았다. 그날 선생님이 자기의 책상 아래서랍에 투표용지를 넣으신 것을 보았다. 친구들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나오라고 했다. 투표용지를 함께 열어 보자고 말이다.
다음날 선생님이 오기 전에 친구들과 투표용지를 꺼내서 세어 보았다. 내 표가 제일 많았다. 사실을 알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모두 함께 2교시 국어시간에 개표를 다시 하자고 하셨다. 결과는 역시 내표가 가장 많았다. 하루만에 반장이 바뀌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다시 봉투를 들고 학교에 오셨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은 영어선생님이셨다. 그 분에게 배운 영어문장 하나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What is the matter with you?”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물어보는 문장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너 무슨 문제 있니?, 어떻게 도와줄까?” 이런 뜻이란다.
얼마 후 백인남자 한명이 지하철역에서 승차권을 구매하는데 애를 먹고있었다. 배운 걸 써먹고 싶어서 달려갔다. “What is the matter with you?”라고 물었다. 백인은 나에게 한동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신촌’을 외치는 것으로 보아 신촌역으로 가는 표를 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표를 사도록 도와줬지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말이 “너 도대체 왜 그래? 정신이 있는거야?” 정도로 상대방을 질책할때 쓰이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년 후에 일이다.
이 분은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입학성적 순으로 반장 부반장을 임명했다고 하셨다. 부반장이 된 나는 몇일 후에 입학성적이 8등인 학생이 반장이 된 사실을 알고 선생님에게 따졌다. 선생님은 임명장이 이미 인쇄된 후이기 때문에 변경은 불가하니, 나더러 반장으로 임명된 친구와 1주일씩 번갈아서 차렷경례를 하라고 하셨다. 가난과 촌지 때문에 ‘폭싹’ 속았던 어린 시절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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