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해당화 만발한 그리운 언덕
지나간 날들은 다시 올 수는 없어도 내 마음은 때때로 그 옛날에 머물곤 한다. 아주 선명하게 그 황홀했던 현장에 말이다.조개잡이 가시는 아빠를 따라 언니와 함께 깡충깡충 뛰면서 따라갔던 그 해당화 만발한 그 언덕은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따져보니 그때가 4살쯤 되었을 때인데 마치 어제 일과도 같다.
그땐 햇볕도 부드럽게 우리를 깜싸줬다. 언니와 손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해당화 만발한 해당화 언덕에서 마치 꽃 속의 나비처럼 얼마나 즐거웠던가.
화사하게 뽐내며 피어 있던 해당화의 자태는 어찌 그리 평화롭고 우아했던지. 하늘도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언덕에서 평화스럽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그대로 어른거린다.
언덕을 지나면 탁 트인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의 모래 사장은 마치 보석이 깔린 벌판 같아 반짝였다.
그때의 아버지는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 살살 바다 속으로 들어가시던 젊은 아빠였다. 오염이 없는 맑고 깨끗한 바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트위스트 춤을 추듯 요리 조리 발을 움직이시던 젊은 아빠가 이따금 조개를 건져 올릴 때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에서 난 행복을 보았다.
얼마 안가 하나씩 하나씩 바구니에는 탐스러운 조개가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우리 셋은 마치 개선 장군처럼 집으로 향했다.
다시 해당화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 올 때 언니는 머리에 조개 바구니를 이고, 나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곳은 러시아 경계선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바로 옆인 함경북도 ‘서수라’라는 곳이다. 그 해당화 만발한 언덕 현장의 추억이 선명하게 펼쳐질 때면 가슴이 설렌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날 꼭 다시 가리라고 꿈꿨지만 희망을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다. 조국의 분단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내 조국, 금수강산. 그 수난의 세월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그 언덕을 걷는다. 해당화 만발한 언덕에서, 그때 그 시절처럼.
이영순 / 샌타클라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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