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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민주주의는 가까운 곳부터

이정호 수필가

이정호 수필가

고등학교 동기가 동문 산악반 카톡을 만들었다. 예전에 산악반에서 활동했던 동문들이 세월이 많이 흘러 서로 연락을 하지 못했거나 만나지 못해왔다. 그래서 서로 다시금 소식도 전하고 안부도 묻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산악반 동문들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톡방을 열었다.  
 
취지가 좋았고 오래전 선후배들을 서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에 반가웠다. 미국에 사는 산악반 선배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는데 다시 연락처를 알아서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도 올라왔다.  
 
내겐 없는 오래전 사진으로 정말 귀한 사진이었다. 옛 추억을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는 사진이었다. 고등학교 학생 때 모습이 앳되고 순수하고 발랄하게 보였다. 그때 우리는 자일을 몸에 걸치고 인수봉에 오르곤 하였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암벽등반을 젊은 혈기로 해냈다.  
 
세상을 먼저 떠난 동문도 있다. 체구는 작지만 수직으로 된 암벽을 잘 타는 1년 선배가 있었다. 그는 캐나다에 있는 호수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 유명을 달리했다. 또 활발하게 산악 활동을 했던 나보다 몇 년 위 선배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서서히 악화되어 고통속에 생을 마쳤다.  
 
오랫동안 서로 만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함께할 자리를 마련하자는 말이 나왔다. 개별적으로는 만나도 산악반 동문 전체가 만나지는 않았다. 해외에 사는 동문은 한국에 갈 기회를 만들어서 함께 모이자고 했다. 이제 나이 들어 모습은 변하였지만 옛 추억을 생각하며 만난다면 반갑고 뜻있는 만남이 되리라고 생각됐다.
 
그리운 인연들과 다시 연결해준 단톡방은 여러모로 유익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불편해졌다. 한국에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발생했다. 누군가 산악반 동문 카톡방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동문이 지난 1월 발생한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에 빗대어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덧붙였다.
 
단톡방에 주도적으로 문자를 많이 올리는 동문이 있다. 그런데 그 동문이 이 방은 무서워서 참여 못하겠다고 하면서 나가버렸다. 좋은 취지로 만든 카톡방 모임이 이렇게 되니 아쉬웠다.    
 
단톡방이 원만하고 민주적인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 가장 삼가야 할 것이 비방과 언어폭력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다른 관점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얼마든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결점도 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도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수에 의해 결정됐다면 그것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회에 자기의 생각과 사상이 실행되기를 엿보아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은 모임에서부터 민주적 원리를 시작하면 어떨까.
 
이 세계와 사회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절충에 의해 흘러가게 마련이다. 보수냐 진보냐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유대 관계일 것이다. 그것은 감히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까운 카톡 모임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간다면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정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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