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생각난다 그 오솔길

서량 정신과 의사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는 지금껏 꽃반지와 오솔길과 사랑했던 남자의 손을 메모리 속에서 더듬는다.
1955년, 남인수의 〈청춘고백〉의 어처구니없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믿는다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당신도 잘 알다시피 유행가의 근본은 생각보다 감성을 피력하는 데 있다. 조국을 잃은 슬픔 또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쓰러움보다 인간의 감성이란 누가 뭐래도 남녀의 사랑이 가장 으뜸이다.
상사병(相思病)을 사전은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라 풀이한다. 서로 相, 생각 思.
그렇다. 서로를 생각하는 병이 상사병이다. 이건 완전 정신과 영역이다.
‘나와 너’가 등장하는 디폴트 세팅이라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사랑이라는 드라마에는 늘 두 사람이 출현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결코 상사병에 걸릴 수 없다네.
‘Brook Benton’은 1961년 〈Think Twic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대답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예스라고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당신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 거예요/ 내 행복이 걸려 있으니까요.”
이렇듯 남녀의 사랑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때가 미국에 있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Yes’라 응답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한번 더하거라, 하던 시절이.
그러나 자유분방한 미국에서 그런 보수성향적 의식구조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1963년. 시대의 반항아 ‘Bob Dylan’이 통기타를 튕기며 부른 노래 중,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이런 부분이 있다. “동틀 무렵 당신의 수탉이 울 때면/ 창밖을 보세요, 난 떠나고 없을 거예요/ 내가 길을 나서는 이유는 바로 당신/ 두 번 생각하지 마요, 괜찮으니까요.”
60년도 중반에 미국을 쓰나미처럼 강타한 히피들을 생각해 보라.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며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큰 공간에 몰려 살며 혼음을 일삼던 히피족들을. 그들은 ‘Bob Dylan’의 노래가사 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떠돌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또 있다. 남녀간 일어나는 생각의 소용돌이가. 전 세계의 팝송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Tayler Swift’의 2019년 히트곡 〈I think he knows〉.
“그의 발자국이/ 보도 위에 남겨져/ 내가 멈출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는 걸/ 매일 밤 그곳으로 내가 가는 걸/ 난 그가 안다고 생각해/ 차가운 유리잔을 감싼 그의 손/ 내가 그 몸을 내 것처럼/ 알고 싶게 만든다는 걸.”
‘가요 반세기’보다 훨씬 긴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가와 팝송에 반영된 우리의 ‘생각’들은, 연인과 함께 걷던 오솔길의 그리움, 죄 많은 청춘을 위한 고해성사, 세심한 사랑의 예식, 그리고 ‘너와 나’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두 번씩이나 하는 수순을 거부하는 대담한 체험을 쌓기도 했다.
급기야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생각의 공감의식(共感意識)에 몰입하고 있다. 온통 자기 멋대로라니까.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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