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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제 '백종원 딜레마'…117만명 홀린 마법, 올핸 불편하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5월 전북 남원에서 열린 '제94회 춘향제'를 앞두고 지역 상인과 남원시 관계자 등에게 먹거리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진 남원시
작년 117만명 방문, 792억 경제효과
전북 남원시가 다음 달 제95회 춘향제를 앞두고 ‘백종원 딜레마’에 빠졌다. 요식업계의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하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춘향제 먹거리를 책임지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지만, 지난 1월 ‘빽햄 가격’ 논란을 시작으로 원산지 표기법 위반 등 온갖 구설에 오르면서다.

사실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마다 거액을 들여 ‘셀럽(유명 인사) 모시기’ 경쟁에 혈안이다. 이찬원·영탁 같은 트로트 가수는 지역 축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대어(大漁)’가 된 지 오래다. 이를 두고 “축제 성공과 지역 홍보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만능열쇠”라는 긍정론과 “단발성 행사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부정론이 엇갈린다.

16일 남원시에 따르면 시는 ‘바가지 요금’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춘향제 때 백 대표와 착한 먹거리 개발 등 협업을 통해 117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이는 전년도(2023년) 춘향제 방문객(40만명)의 3배 수준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백 대표가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해 개발한 1만원 이하 메뉴가 130만 인분이 팔리면서 792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냈다.

지난해 5월 제94회 춘향제가 열린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주변 먹거리 부스가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 남원시 지난해 5월 10~16일 전북 남원에서 열린 제94회 춘향제를 찾은 방문객들이 광한루원 주변에서 먹거리를 즐기고 있다. 사진 남원시 지난해 제94회 춘향제가 열린 광한루원 주변 먹거리 부스에 방문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사진 남원시
남원시, 2년간 더본코리아에 10억 지급
이에 남원시는 올해 춘향제도 200만명 유치를 목표로 백 대표와 손잡고 축제와 먹거리를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도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남원시가 지난해 더본코리아와 맺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생·발전 업무 협약’에 따른 후속 조처다. 남원시는 ▶먹거리 구역 콘셉트 기획 ▶메뉴 개발 ▶운영자 관리 등 컨설팅 비용으로 지난해 축제에 이어 2년간 더본코리아 측에 약 10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최근 백 대표를 둘러싼 상술·공정성 논란이 잇따르자 남원시는 춘향제에 악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서울사무소 특별사법경찰은 원산지 표기법 위반 혐의로 백 대표를 불구속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백 대표는 농업진흥구역에서 국내산 농산물이 아닌 중국산 개량 메주 된장 등으로 ‘백종원의 백석된장’을 만들고, 국내산 마늘을 사용한다고 홍보한 ‘한신포차 낙지볶음’에 중국산 마늘을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신문고에는 백 대표의 춘향제 참여를 재고해 달라는 민원까지 제기됐다. 해당 민원인은 “춘향제에서 ‘바가지 요금 근절’을 외쳤던 인물이 정작 자신의 브랜드에서는 ‘높은 가격 정책’을 유지했다면 이는 행사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이고 춘향제가 내세운 공정성의 가치를 흐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춘향제가 백 대표의 브랜드 홍보와 돈벌이 수단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다.

최경식(왼쪽) 남원시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5월 10일 전북 남원에서 열린 '제94회 남원 춘향제' 개막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원시장 “백종원과 경제 활성화 모델 구축”
충남 예산군에도 백 대표를 홍보대사에서 해촉해 달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논란이 잇따르자 백 대표는 지난 14일 더본코리아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용납할 수 없는 잘못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신속한 개선을 약속했다.

남원에선 “춘향제 기간에 백 대표가 운영하는 음식 부스에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지역 상인 매출 상승엔 역효과를 낳았다”는 불만이 여전하다. 이런 우려에도 최경식 남원시장은 백 대표의 역량과 명성을 빌려 춘향제 성공과 함께 지역 경제 활성화 모델을 구축하겠단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지자체가 셀럽을 축제 등 지역 홍보를 위해 활용할 땐 역할·비중·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셀럽의 인지도·인기를 빌려 단기간에 대중의 이목을 끌기는 쉽지만, 동시에 한 번 논란에 휘말리면 지역 이미지까지 손상될 수 있어서다. ‘고비용’ 논란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전북 장수군이 2019년 9월 '제13회 한우랑 사과랑 축제'를 앞두고 추진한 싸이 공연 포스터. 싸이 등이 출연할 예정이던 '장수락(樂) 페스타'는 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장수군이 축제를 취소하면서 무산됐다. 사진 장수군
“예산 낭비” “젠트리피케이션” 지적도
한 예로 전북 장수군은 2019년 9월 ‘제13회 한우랑 사과랑 축제’에 1억5000만원을 들여 가수 싸이 공연을 추진했다 “인구 2만여명에 재정 상태가 열악한 자치단체가 지출하기엔 행사비가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장수군이 축제를 취소하면서 싸이 공연도 무산됐다.

이른바 ‘백종원 매직’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충남 예산시장은 점포 월세가 200만원까지 치솟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논란에 휩싸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 낙후 지역이 활성화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나 기존 상인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시골의 평범한 장터였던 예산시장은 백 대표가 손대면서 연간 35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예산군은 2023년부터 예산이 고향인 백 대표와 함께 인근 삽교읍에 곱창특화거리를 조성하고, 맥주 페스티벌 등을 열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꾼이 몰리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 못 해 시장을 떠나는 상인이 속출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5월 전북 남원에서 열린 '제94회 춘향제'를 앞두고 지역 상인과 남원시 관계자 등에게 먹거리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진 남원시
“외부 힘 빌리면 ‘반짝 효과’”
지난해 11월 백 대표가 경남 통영시와 함께 진행한 ‘통영 어부장터 축제’도 논란이 됐다.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는데 “천막 하나 없었다” 등 방문객의 불만이 터지면서다. 이에 백 대표는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치단체가 자생력을 가지고 지역을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손쉽게 외부 힘을 빌리면 ‘반짝 효과’에 그치거나 꼼짝없이 휘둘리게 된다”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인이나 기업이 업무를 장악하는 순간 애초 아웃소싱(위탁)·협업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단체장이 주도권을 잡고 지역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제95회 춘향제는 ‘춘향의 소리, 세상을 열다’란 주제로 오는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광한루원과 요천변 일원에서 열린다. 남원시는 축제 기간 150여개 공연 프로그램과 ‘춘향 세일 페스타(지역 특산물 할인 행사)’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인도네시아·베트남·일본·중국·캐나다 등 해외 5개국까지 참가자 범위를 확대한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는 춘향제의 백미로 꼽힌다.

▶백종원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백종원(59) 더본코리아 대표는 '한식대첩' '집밥 백선생' '골목식당' '흑백요리사' 등 숱한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백종원 신드롬'이 불면서 그가 이끄는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25개, 국내 가맹점은 2917개까지 늘었다. 지난해 11월엔 주식 상장에도 성공했다. 백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만 670만명에 달한다.

백 대표가 손댄 지역 축제는 대부분 대박이 났다. 지난해 춘향제가 대표적이다. 이영미 남원시 홍보전산과장은 "다양하고 품질 좋은 요리를 1만원 이하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면서 춘향제의 신뢰도를 높이고 화제성도 잡았다"며 "'백종원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했다.

그러나 백 대표에 대한 최근 여론은 싸늘하다. 상술 논란과 원산지 표기법 위반 등 악재가 줄줄이 터지면서다. 더본코리아가 만든 통조림 햄 '빽햄', 과일 맥주 '감귤 오름'이 도마 위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타사보다 가격이 높은데 돼지고기 함량이 낮다거나 감귤 하나로 맥주 750캔을 만든다는 지적이다.

백 대표가 국내 농가를 돕겠다는 취지로 판매한 닭고기 밀키트(간편식)에 브라질산을 쓴 것도 논란이 됐다. 백 대표는 농지법·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도 고발됐다. 충남 예산군에 있는 더본코리아 백석공장(된장 제조)에서 농업용 온실을 불법 창고로 사용한 의혹이다. 논란이 잇따르자 상장 첫날 6만4500원을 찍었던 더본코리아 주가는 2만8500원(3월 11일 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다.




김준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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