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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비생산적인 재테크로 각자도생하는 나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진 세 가지 자산시장의 지난 한 달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첫째, 서울의 부동산 시장이다. 한 달 전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지구가 지정 해제되면서 잠잠하던 부동산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5년간 눌려있던 해당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며 무주택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대출 통계에서도 확인되는데, 지난달 시중 5대 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7조4878억원으로 전월 대비 34% 증가했다. 여기에 한은 기준금리 인하, 금융기관들의 대출금리 인하 경쟁, 지방소멸로 인한 서울 주요지역 부동산의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이러한 상승세는 당분간 꺾기 힘들어 보인다.

위험자산은 하락, 부동산은 상승
개인투자자들 재테크 힘든 상황
우리 연금제도 성숙도 낮기 때문
건전한 자본시장 생태계 갖춰야

둘째, 미국 증시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최근 한 달간 나스닥종합지수는 6.8% 하락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레버리지 ETF 종목들에 투자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률이 20∼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매수액 1위인 디렉션 데일리 테슬라 2배 ETF는 한 달간 계좌 평균 원화 환산 수익률이 -30.7%에 달했다.

셋째, 가상자산시장은 어떠한가. 주식보다 위험한 자산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 가상자산시장은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지난 금요일 기대를 모았던 백악관의 크립토서밋 행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몰수된 비트코인만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유할 것이라 밝혔으나, 시장에서 기대했던 추가구매 조치는 없어 실망이 컸다. 3월 둘째 주 동안 비트코인은 -11%, 이더리움은 -17%, 리플은 -23%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크립토서밋에 참석했다. 좌측부터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장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인공지능(AI) ·암호화폐 차르, 보 하인스 보 하인스 백악관 디지털 자산 대통령 자문위원회 전무 이사. AP=연합뉴스

세 가지 시장 상황은 대다수 개인투자자에게 힘든 상황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청년들이 노동소득만으로는 접근이 힘들다. 그래서 미국 주식 레버리지 투자나 가상자산에 투자하지만, 이런 고위험 투자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개인은 극히 드물다. 위험자산은 큰 폭으로 하락해 손실이 나고, 부동산은 더 멀어져 보이니 견디기 쉽지 않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도 난감하다. 서울 주요지역은 재건축 외 추가 주택공급이 어렵고, 내수 침체로 금리는 인하할 수밖에 없다. 금리가 떨어지면 대출수요가 증가하고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려 소비는 진작되지 않고 자영업은 더 어려워진다. 또한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투자는 원화 약세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직접투자 규모는 작년 여름 기준 900억 달러를 상회하는데, 국내 시가총액의 약 6% 수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가상자산거래 비중이 세계 1위로, 주식거래액보다 가상자산 거래액이 더 큰 유일한 나라이다. 부동산, 해외주식, 가상자산의 공통점은 한국경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본업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미국 경제지표와 트럼프 발언까지 분석하며 개인들이 직접 투자를 하고 있을까? 한 가지 이유는 미국과 유럽보다 우리의 연금제도의 성숙도가 낮아 노후를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1988년, 퇴직연금은 2005년에 도입되었다. 독일은 1889년, 영국은 1908년에 공적연금을 도입했고, 미국도 1935년 사회보장법, 1974년 퇴직소득보장법을 시행했다. 공적연금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일정 기간 노동시장에 참여했다면 노후 걱정을 하지 않는다.
2025년 1월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 연합뉴스

예를 들어 미국은 공적연금, 401(k)와 같은 퇴직연금, 뮤추얼 펀드 등이 주식시장거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성숙한 기관투자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진은 기업의 성장과 주가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미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국 주식에 간접 투자하게 되고, 이 자금은 혁신기업들의 대규모 장기투자자본으로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성장은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주가 상승의 혜택은 다시 근로자들의 노후소득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미국 경제의 저력이자 근간이다.

반면에 1997년까지 정년보장형 고용시스템, 부모봉양이라는 전통, 인구가 계속 성장한다는 낙관적 전망 속에서 노후보장 시스템에 대해 크게 대비하지 않았던 우리는 지금 노후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주주권익 침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투자자본이 국가 생산성 향상과 무관한 영역으로 이탈하고 있다. 개인의 노후 안정과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자본시장 생태계가 받쳐주고, 국민의 노후보장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3%와 44% 사이만 협의하면 되는 다 차려진 밥상도 걷어차는 여야 정치권에서 아무리 몇십조원 펀드를 조성한다며 AI 테마에 숟가락 얹으려고 해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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