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암수범죄’ 아동학대 사망, 지켜만 볼 건가

정부는 학대 조기 발견과 신속한 개입, 심리적·의료적 회복 지원, 재학대 예방을 위한 전문 사례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등 발굴체계 구축과 사회적 보호망 조성에 그동안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단순한 안타까움과 감정적 비난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실효적 대책을 찾아 시행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모든 아동 사망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아동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월 3~4명, 끊이지 않는 아동 희생
단순 사망 사건으로 덮을 일 아냐
미국·일본처럼 법·제도 보완해야
단순 사망 사건으로 덮을 일 아냐
미국·일본처럼 법·제도 보완해야

지금은 모든 아동 사망 사건으로 분석 대상을 확대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법 집행자, 아동보호서비스 관계자, 검시관, 소아응급의학과 의사 등 다학제적 팀을 구성해 조사·분석하고 있다. 국가 및 지역의 아동 사망 패턴과 추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아동 사망을 예측·예방함으로써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2004년 아동학대 사망 분석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사망 사례 분석을 추진하고, 중앙정부인 후생노동성이 매년 주요 분석 주제 등을 선정해 종합보고서를 발간한다.
한국에서도 중앙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사망분석 제도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학대위기·피해 아동 발굴 및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아동학대 사망 분석 상설화를 위한 대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정책의 근간인 실태 파악부터 관계 기관별 통계가 엇갈린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 대검찰청 범죄통계, 통계청 사망 원인 통계 등에서 아동학대 사망 건수조차 일치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의 협조 없이는 조사내용 열람과 공유가 불가능해 실질적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학대 사망 정보의 수집과 면담 절차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진이 판단한 아동 사망 원인이 ‘기타 및 불상’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사망 원인을 분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전문가들이 사망 원인을 분석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범죄 혐의 판단과 가해자 처벌은 수사기관 몫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망 분석 제도를 통해 다학제적 전문팀이 투입된다면 학대 피해 아동이 사망에 이르게 된 환경적 원인과 제도적 취약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유사한 학대 사망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범부처 차원에서 총괄적으로 아동보호 체계를 개선하는 환류 시스템을 만들고, 개선 방안에 대한 법적 이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아동학대 사망 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법안 4건이 발의됐으나 끝내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돼 심의 중이다. 실질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조속한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야만 세상이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사후 대책을 마련한다면 후진적이다. 얼마나 더 많은 아동 사망 사고를 접해야 법적 기반을 제대로 마련할 것인가. 올해는 반드시 아동학대 사망 분석 제도를 법적으로 확립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마련돼야 한다. 바로 지금이 소중한 아동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