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문 턱에서
어느 한 사람은 열정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집착이라고 했다 / 그리움은 무어라고 말해도 다 맞고 또 다 틀리다 / 말에도 온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온도가 있기 때문이다 / 그 온도의 높낮음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한다 // 길을 걷는 것도 때로는 허망한 생각이 들 때 /서로의 동선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부터 / 이야기는 작은 골목 끝까지 퍼져나갔고 / 나는 그곳에 집 한 채를 지으려 매일 잠을 설쳤다 / 쌓다가 허물고 허물어 내린 기억들을 모아 다시 집을 지었다 / 발 뻗으면 닿을 만큼만 불편한 집을 지었다 / 사람들은 손을 들어 손가락질을 했다 / 살아가려면 삶의 목적이 있어야겠는데 / 그 목적은 다른 세계의 숨겨진 길이 되었다 // 사람들은 뭐라든, 겨울 문턱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 /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이 후에도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데 / 나는 무대를 등진 힘 없는 관객일 뿐 / 버리고도 함께라는 대단한 의미는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 호수는 언제나 잔잔한 물결을 살려내듯 / 언젠가 꺼져가던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 그 불꽃을 보듬으며 사는 것도 삶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 하늘이라도 끌어 내려 뿌옇게 변해가는 이 새벽 / 지은이의 속삭임으로 앞을 가름할 수 없는 안개는 내리고 / 겨울 문턱에서 길을 잃은 늦가을 깊은 심연의 기억들 /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 왜 그렇게 서둘러 갔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신호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212/13/d01ef5bc-90ee-47c8-aae0-76fe272c4ea4.jpg)
[신호철]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길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다. 안으로 더 깊이 안개 속으로 걸어가 보았다. 안개는 나를 두고 뒷걸음을 쳤다. 옷이 안개에 젖을 때까지 나는 안개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시간은 때로 살 같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느린 움직임으로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 시간이야 말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속도인 것 같다. 안개는 걷힐 것이다. 바람이 불면 더 빨리 걷힐 것이다. 안개 속에서는 불투명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헤메이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목적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집을 지을 것이다. 언제인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었을 때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선 지금의 쓸쓸함을 안고 갈 것이다. 마음 속 일렁이는 흔들림의 차이이려니 생각하고, 새벽을 기다리는 이유이려니 생각하고, 언덕 너머 지는 석양 앞에 한없이 앉아 있고 싶은 이유이려니 생각 하면서…. 그곳엔 늘 나를 다독이는 당신의 음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음성은 고요함으로 다가오기에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존재했던 사실은 소멸될 수 없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에….
내가 기대어 사진을 찍던 안개 속 우뚝 선 나무 한 그루를 바라 본다. 나무는 올 겨울에도 속으로 속으로 가지를 키울 것이다. 나무는 자신을 아는 만큼 믿음이라는 스스로의 가치를 가지를 뻗음으로 이루어 갈 것이다. 작은 씨앗으로 땅에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이렇게 큰 나무로의 성장을 꿈꾸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그 키를 키우면서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해 보지 않았던 믿음이란 가치를 지금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예쁘고 아담한 담
당신이 내게 만들어준 담
넘을 수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날마다 눈을 뜨고
해 저물어 긴 그림자 지면
이곳에서 서성거린다
당신의 향기를 맡으며
당신의 음성을 들으며
당신의 모습을 훔쳐보며
예쁘고 아담한 담 너머
나의 별이 떠오르면
당신이 잘 보이는 곳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우리의 삶도 서로에게 믿음을 보이며 키가 자라고 깊고 높게 가지를 뻗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 겨울 내내 새 가지를 꿈꾸며, 침묵으로 새 길을 발견해내는 나무에게 배운다. 안개 속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립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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