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가톨릭계와도 인연…"별명 '스마일링' 주교"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서임]
한국인으로서 네 번째 추기경 서임
가톨릭 교계 역사 새롭게 쓰여져
대전교구장때 미주에 사제 다수 파견
성품 온화하고 사람들과 친화력 있어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지위 높아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
유흥식 라자로(71)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추기경에 서임됐다. 240년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네 번째다. 한국은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 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염수정 안드레아(78) 추기경에 이어 또 한 명의 추기경을 배출하게 됐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출신이다. 그동안 서임된 추기경들은 모두 서울대교구장 출신이었다.
유 추기경은 미주 한인 가톨릭계와도 인연이 깊다.
남가주 지역 김제동 부제는 리버사이드 지역 성 김대건 성당에서 유 추기경과 교제를 나눈 바 있다.
김 부제는 "유 추기경이 대전교구장 시절 성 김대건 성당에 사제들을 많이 파견했었고 1년에 한번 정도씩 남가주를 방문했었다"며 "별명이 '스마일링 주교'다. 항상 웃고 계시고 성품이 온화하고 친절하며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은 분"이라고 말했다.
추기경 배출 소식은 한인 가톨릭계에도 경사다.
LA지역 가톨릭 교인 이정선(49)씨는 "유흥식 추기경 서임 소식은 미주 한인 가톨릭 교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일 정도로 경사"라며 "한국에서 네 번째 추기경을 배출하게 돼 너무 감격스럽고 모든 성직자를 돌보는 성직자로서 추기경직을 잘 수행하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종신직이다. 염수정 추기경도 서울대교구장에서는 은퇴했지만 현재 추기경직은 유지하고 있다.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이 있다.
다만 만 80세가 넘으면 교황 선출 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투표권이 있고 유 추기경은 앞으로 10년간 투표권이 있다.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은 현재 226명이며 이 중에서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은 132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추기경을 임명한 것은 2013년 즉위 이후 여덟 번째다. 이번 서임식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 스페인 프랑스 나이지리아 브라질 인도 미국 동티모르 이탈리아 가나 싱가포르 파라과이 콜롬비아 출신 추기경이 배출됐다.
서임식에서 유 추기경은 영국의 아서 로시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이 불리었다. 앞에 선 유 추기경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이에 유 추기경은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서임식 후에 유 추기경은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교황님께 편지를 쓸 때 내가 첫머리에 항상 쓰는 표현"이라며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혔다.
이날 교황은 새 추기경들에게 로마의 성당 하나씩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하는 칙서도 전달했다. 유 추기경은 로마의 '제수 부온 파스토레 몬타뇰라(착한 목자 예수님 성당)'를 명의 본당으로 받았다.
유 추기경은 서임식 하루 뒤인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한인 신학원에서 서임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유 추기경은 미사 중 강론에서 "낮은 자리야말로 하느님과 밀접한 특권의 자리"라며 "각자에게 부여된 삶을 은총으로 받아들여라. 나머지는 하느님이 생각하시고 올려주신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얽힌 일화도 들려줬다. 지난 5월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듣고 막막해하는 그에게 교황이 "추기경님 가끔 (추기경의 옷 색깔인) 빨간 옷을 입으면 예쁘게 보이니 잘 입어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어 모국어처럼 구사해
교황청 내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
유흥식 라자로(71) 추기경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로 인해 교황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교황청 내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3년 귀국 후 대전 대흥동성당 주임 서리 솔뫼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을 지냈다. 대전가톨릭대 교수 총장 등을 거쳐 2003년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됐다. 2005년부터 대전교구장으로 직무를 수행해오다 지난해 6월 대주교 승품과 동시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령이 났다. 성직자부는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신학교 사제 양성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의 중요 행정기구 중 하나로 교황청 역사상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교황청 장관은 관례상 추기경이 맡아왔기에 유 대주교의 장관 발탁 당시부터 추기경 임명이 확실시돼 왔다.
그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된 지 11개월 만인 지난 5월 29일 종신직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는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며 특별한 친교를 쌓아왔다.
교황은 유 추기경의 탈권위적인 면모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 강력한 추진력을 눈여겨보다가 그를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서구 출신 성직자들이 도맡다시피 한 교황청 장관에 가톨릭계 변방인 한국의 지역 교구장을 임명하자 현지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유 추기경은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두고 사회복지 활동에 힘써왔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품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성직자다. 교황을 보필해 교회를 원활하게 이끄는 역할을 한다.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다.
백성호·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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