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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를 바꾼 30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상아탑이 아닌 현장의 신학 추구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기독교 순교자로 디트리히 본회퍼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하는 중대한 결단임을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참된 제자’의 도리를 실천한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다. 순교자로서 그의 짧았던 삶은,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악의 세력들 앞에 굴복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본회퍼는 1906년 독일의 브레스라우에서 출생했다. 튀빙겐과 베를린 대학을 거쳐,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1930년까지 신학을 공부했다.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독일로 돌아가 베를린 대학에서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33년, 히틀러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어용 목사들을 동원해 독일 복음교회 (German Evangelical Church)를 새로 조직하면서, 독일 민족인 아리안족 이외 다른 인종의 목사 안수를 금지하는 소위 ‘아리안 규칙’ (The Aryan Paragraph)을 발표했다. 아리안규칙은 특별히 유대인 혈통을 지닌 사람의 기독교 개종이나 목사 안수 및 예배 참여를 금지하는 등, 반 유대인 정책이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배타적이며 반 기독교적인 독일교단의 움직임에 대해 젊은 신학자 본회퍼는 ‘교회와 유대인 문제’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히틀러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진정한 교회의 사명은 정치적 불의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이 불의한 체제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돌보고 반 기독교적인 불의한 체제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어느 미친 사람이 많은 손님을 태운 상태로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면, 교회의 사명은 그 미친 운전사가 사고를 낸 후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버스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사의 운전대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미친 운전사로 표현된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를 암시하는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었다.

 히틀러의 ‘복음교회’에 대항하여 독일의 ‘고백교회’ 운동이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고백교회 운동은 히틀러의 통제를 받는 어용 교회의 반 기독교적인 신학을 반대하면서 진정한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고자 했던 독일 기독교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에서 독일 회중교회의 목사로 잠시 일하던 본회퍼는(1933-34년) 독일 고백교회의 신학교였던 핀켈발드에 교수로 취임하면서, 독일 고백교회의 반(反) 히틀러 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1937년 이 학교는 강제로 문을 닫게되고, 이 때부터 본회퍼는 본격적인 히틀러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주로 시골지역의 고백교회를 찾아 다니며, 제자들과 후배들의 목회를 격려하고,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 저항 세력들과 연계한 국제 활동에 깊숙히 관여했다.

 반 히틀러 운동의 선봉에 서 있던 본회퍼의 안전을 염려하던 미국의 신학자들이 그를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초빙했고 (1939년), 본회퍼는 일단 그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온 본회퍼는 히틀러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독일 고백교회의 일원으로서 반 히틀러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귀국하기로 결정한다. 상아탑의 신학이 아니라 현장의 신학을 추구하던 본회퍼에게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처남과 함께 ‘오퍼레이션 세븐’ (Operation Seven)이라는 암호명으로 은밀히 추진하던 유대인 도피작전을 통해 14명의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는 등, 반 히틀러 운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는 1943년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된 다음, 2차대전 종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1945년 4월 9일) 히틀러 암살 계획의 배후 조종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역사는 히틀러를 전쟁 범죄자로 단죄했지만, 히틀러에 의해 죽임을 당한 본회퍼는 기독교의 살아있는 양심의 상징으로 오늘까지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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