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 박사의 성경 바로 읽기] <8>토라(율법)의 일점일획
히브리어의 ‘토라’는 본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주전 3∼2세기 사이에 걸쳐서 완성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 ‘칠십인역’에서는 ‘토라’를 ‘노모스’로 번역하였다. 헬라어에서 ‘노모스’는 보통 ‘법’ 내지는 ‘규범’을 뜻한다.하나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에게 삶의 지침이 되므로 얼마든지 이처럼 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세 오경만 헬라어로 번역된 시기가 주전 3세기경인 점을 감안해볼 때, 늦어도 헬라 시대(이스라엘에서는 주전 4∼1세기를 가리킴)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토라’를 일종의 ‘종교법의 총체’로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헬라어 낱말은 신약 성경 안으로 들어왔으며, 다시(이 헬라어의 영향으로) 번역을 거쳐 기독교 세계에서 ‘the Law’, ‘율법’ 등과 같이 헬라어 ‘노모스’와 맥을 같이하는 낱말들로 옷 입고, 히브리어의 ‘토라’에 대한 대변자의 자리를 굳혔다.
이러한 번역 과정과 더불어 헬라어 ‘노모스’와 이와 비슷한 의미 영역을 가진 기독교 세계 언어들의 단어들은 ‘토라’ 또는 더 나아가서 ‘구약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온 듯 하다.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영향력이 긍정적인 면에 있지 아니하고, 대체로 부정적인 면에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모스’ 개념과 관련하여 예전부터 유대인들은 ‘토라’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토라’는 ‘모세 오경’, ‘구약 성경 전체’, ‘구약 성경에 미슈나, 탈무드 등 유대인의 구전 토라를 포함한 것’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마태복음 5:17에서 ‘토라’, 곧 ‘노모스’는 ‘선지자들’(히브리어로 ‘네비임’이라고 함)과 나란히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보통 구약 성경을 셋으로 나누어 가리킬 때 사용하는 ‘토라(저자의 이름을 따라 ’모세‘라고도 함), 네비임, 케투빔(대표적으로 ‘시편’이라고도 함)’ 중 대표적으로 앞의 둘만을 언급하신 것이다.
구약에 대한 이러한 이름은 신약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마태복음 7:12, 22:40, 누가복음 16:16, 29, 31, 24:44, 요한복음 1:45, 5:46∼47, 6:45, 사도행전 10:43, 13:15, 27, 40, 15:15, 24:14, 28:23, 로마서 3:21 등 참조).
문맥을 통하여 볼 때, 마태복음 5:18의 ‘노모스’, 곧 ‘토라’는 앞서 17절에서 언급한 구약 성경 전체를 대표하여 거론되었다.
18절의 ‘일점일획’은 헬라어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하나의 이오타’ 또는 ‘한 획’이 된다. ‘이오타’는 헬라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로서, 히브리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인 ‘요드’에서 온 것이다.
사실상 ‘요드’는 히브리어 알파벳 중 가장 작은 글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단지 정방형의 아람어(Aramaic) 글자일 때만이 사실이며,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방형의 아람어 알파벳에서는 ‘달렛’과 ‘레쉬’, ‘베이트’와 ‘카프’ 등 사용되는 획의 근소한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달라지는 글자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주후 1세기에 유대인 중에는 정방형의 아람어 글자체가 이미 고대 히브리어 글자체를 물리치고 히브리어 표기를 위한 문자 언어로서의 자리를 굳게 차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고대 사본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많은 이들이 구약 성경, 더 나아가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축자 영감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마태복음 5:18의 말씀을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믿고 그것의 완전성을 변호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성경 기록의 문맥에 나타난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무조건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함으로써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마태복음 5:18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아주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마태복음 5:17∼20의 말씀은 구약 성경의 권위와 성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을 이루시고자 오셨다. 다시 말해서 그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예언)의 결정체가 된다.
마태복음 5:17∼20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이미 율법을 다 이루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유추 해석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노모스’적 개념에 빠진 이들의 과오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이제까지 ‘율법’(〓노모스)적으로만 좁게 이해하였던 주후 1세기의 유대인들과 더 나아가서는 금세기의 기독교인들에게 ‘토라’ 본래의 뜻을 밝혀 주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