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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론] 멀티 트랙(Multi-Track) 외교

이길주/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베트남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은 1965년 4월 7일이다. 이날 린든 존슨 대통령은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대학을 방문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때 존슨은 깜짝 놀랄 제안을 한다. 호치민이 전쟁을 포기하면 당장 10억 달러를 인도차이나의 젖줄 메콩강 개발을 위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바긴’을 합친 것과 같은 개념이었다.

이어 자신의 개발안을 브리핑 하듯 설명해 나갔다. 먼저 식량을 증산하고 전력을 생산하며, 병원과 학교를 지어 삶의 질을 높이고 당장 필요한 생필품은 미국의 창고에 넘쳐나는 잉여물자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존슨은 자신의 제안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확신으로 차있었다. 자신의 고향이 풍부한 전력 공급으로 변화된 모습을 회상했다. 시 구절과도 같은 감성적 언어로 그는 말했다.

“전선(電線)이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우울한 밤과 차가운 겨울이 지배했던 땅에는 어두운 밤이 환하게 밝혀졌다. 부엌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고, 집안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베트남에도 이런 변화를 가져다주고 싶다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매일 밤 잠에 들기 위해 등불을 끄기 전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는가라고.” 존슨은 연설을 마치고 한 측근에게 “호 그 노인네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것(Old Ho can't turn that down)”이라고 장담했다.

존슨의 예측은 빗나갔다. 호치민의 꿈은 베트남의 ‘개발’이 아니라 ‘해방’이었고, 메콩강 유역의 전력(電力) 공급이 아니라 적화(赤化)였다. 당연히 존슨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한 해 호치민 통로를 따라 약 3만5000명이 남쪽의 전선에 투입된다.

존슨 정부는 일언지하에 청혼을 거절당한 사내처럼 칼바람 날리며 ‘획’돌아섰다. 개발이 아니면 파괴. 둘 중에 하나였다. 존슨은 당장 북폭을 확대했다. 네이팜탄으로 적진을 불태우고 고엽제로 식물을 말려 죽였다.

지상군도 대폭 늘렸다. 그 해 말 월남에는 18만명의 미군이 싸우고 있었다. 한국군도 2만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의 비극은 깊어 갔다. 존슨이 팔을 걷어붙이고 개발을 돕겠다던 메콩강 유역은 최대의 베트콩 활동지역이 된다.

최근 북한이 남북간의 비밀 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남측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알맹이 없는 사과의 뜻을 표시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돈 봉투까지 거리낌 없이” 내 놓았다고 폭로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북은 핵개발과 군사모험주의를 포기하면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흙발로 짓밟은 것과 같다.

지금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앞의 존슨 경우처럼 강경노선을 고집할 수 있다. 무(無)대화, 고(高)긴장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북을 절대 진정성을 갖고 일대일로 대화할 수 없는 상대로 간주하고 6자 회담과 같은 다자 협상테이블에서 만나는 것이다. 말썽 많은 이웃을 상대할 때는 혼자 보다는 여럿이 같이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돌출행동의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후자는 북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게는 북에 대한 양보로 비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자회담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 수정이 아님을 국민에게 진정을 갖고 설명하면 된다.

이미 미국은 대북식량지원을 고려 중이고, 6자 회담 특사 ‘성 김’을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했다. 또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중국으로 보냈다. 6자 회담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교는 본래 멀티 트랙(Multi-Track)이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성숙한 외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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