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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이런 손님, 저런 손님

채수호/자유기고가

세탁소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다. 유모차를 타고 온 갓난아이로부터 10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의 사람이 세탁소를 찾는다.

손님의 연령층뿐 아니라 직업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교사, 부동산 개발업자, 수퍼마켓 캐셔, 요리사, 미용사, 군인, 경찰관, 소방관, 고위공무원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직종의 사람을 만난다.

세탁소 손님의 남녀 비율은 여자가 남자보다 약간 많은 듯하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이혼한 부부가 세탁소에서 만나 친구처럼 인사를 나누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대개 손님들은 세탁소를 한 번 정하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거의 고정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손님과 주인간에 친밀감이 쌓이게 된다. 물론 델리나 그로서리 같은 곳도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의 손님들이 이용하지만 세탁소처럼 손님과 주인이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들 교육이나 날씨 등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손님과 주인 사이뿐 아니라 손님과 손님끼리도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레 대화가 오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세탁소가 마치 동네 아낙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하던 옛날 한국의 우물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손님들은 아이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임신한 손님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세상에 나와 아장아장 걷더니 무럭무럭 자라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어지럽게 빠른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한국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부모들도 많은데 한 번은 너댓살 된 남자 아이가 부모를 따라왔다가 카운터 안쪽에 서있는 아내를 보더니 갑자기 안으로 걸어 들어와 아내를 끌어 않고 얼굴을 비벼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도 있었다. 어린 것도 제 모습과 비슷한 사람을 보니 반가웠던 게다.

이제는 80세로 접어든 한국전 참전군인들이 찾아오면 VIP 대접을 한다. 달려나가 차 문을 열어드리는 것으로부터 특별 디스카운트까지 극진히 모신다. 몇 해전만 해도 여러 첨전용사 분들이 오셨는데 다 돌아가시고 이제 미스터 로젝 한 분 밖에 안 오신다.

남녀노소 여러 손님을 대하다보니 손님의 성격도 각양각색이다. 옷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카운터 위에 휙 던져 놓고 전표도 안받고 그대로 가버리는 통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셔츠 한 두 장 맡기고 나가면서 전표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다.

셔츠에 풀이 좀 덜 먹여졌다고 카운터를 치며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의 구멍 난 털장갑을 무료로 꿰매어 주었다고 커다란 꽃다발과 초콜릿을 사들고 오는 천사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런 손님, 저런 손님 숱한 사람들을 겪다 보니 이제 사람의 인상만 보아도 대략 그 사람의 성격이며 직업까지 알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우스개 소리지만 이쯤 되면 세탁소 접고 미아리 고개에 자리 깔고 나앉아도 되지 않나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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