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바람처럼 찾아온 마이크
채수호/자유기고가
그림자 같이 늘 따라다니던 아들 사이먼이 안보이기에 물었더니 리하이대학에서 마련한 정신박약아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단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 사이먼은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얼굴표정이나 하는 짓은 아직도 천진스런 어린아이 같다.
마이크는 세일즈를 나갈 때마다 아들 사이먼을 늘 차에 태워 데리고 다니면서 친구처럼 장난도 치고 툭툭 치기도 하면서 참 다정한 아빠가 돼 주었다.
1년에 4만5000마일이나 뛰는 세일즈 트립을 늘 아들과 함께 다니다가 갑자기 혼자 다니게 되었으니 좀 외롭기는 하겠지만 아들이 대학생 자원봉사 선생님들을 잘 따르고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니 참으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 때 시종 미소를 잃지 않는 희한한 재주를 갖고 있는 마이크는 물가, 리비아 공습, 일본의 원전사태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수다를 떨면서 정작 화공약품을 사라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질 않는다.
세탁소용 화공약품을 파는 회사의 고참 세일즈맨이므로 드라이크리닝 비누나 얼룩 제거용 케미컬을 팔러 왔을 터인데 올 때마다 약품 이야기는 안하고 딴청만 피우는 것이다. 이번에도 결국 비즈니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내 쪽이었다. 드라이크리닝 비누가 바닥 났으니 5갤런짜리 하나를 갖다달라고 주문을 한 것이다.
마이크는 단수가 높은 세일즈맨이다. 그는 제품을 팔기 전에 먼저 고객의 마음부터 산다. 고객이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으면 1960년대 폴리에스터가 등장해서 드라이크리닝 업계가 극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을 때 선배들이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이야기를 들려줘 용기를 심어 준다.
옷에 묻은 얼룩이 잘 빠지지 않아 고심하고 있으면 소매를 걷어부치고 직접 얼룩제거 작업을 해 보여줘 자사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자연스레 높인다.
이렇듯 고객과 허물없는 친구처럼 인간관계를 맺어 놓으면 제품은 사라는 말을 안 해도 자연히 팔리게 된다. 먼저 판매한 제품이 다 떨어져 갈 무렵에 고객을 찾아가서 다시 주문을 받고 신제품이 나오면 한 번 써보라면서 작은 병에 든 샘플을 놓고 간다.
세탁소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세탁소 용품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회사가 어렵다고 마이크 같은 고참 세일즈맨을 해고시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평생을 세탁소 용품 판매 이외에 다른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마이크가 실직하게 된다면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들 사이먼은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마이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가 버렸다. '잘 가게 마이크, 2∼3개월 후 바람처럼 꼭 다시 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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